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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운림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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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운림산방
Ullimsanbang Villa and Garden, Jindo
진도 운림산방,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도 운림산방
영문명칭 Ullimsanbang Villa and Garden, Jindo
한자 珍島 雲林山房
주소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사천리)
지정(등록) 종목 명승 제80호
지정(등록)일 2011년 8월 8일
분류 자연유산/명승/역사문화경관
수량/면적 1,367,620㎡
웹사이트 진도 운림산방,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화가인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9~1892)이 철종 7년(1856)에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운림산방이라 이름 붙였다.

이곳은 김정희가 1856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제자 허련이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초가를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낸 곳이다. 허련의 문집인 『소치실록(小痴實錄)』에 따르면, 큰 정원을 다듬고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를 심어 신선들이 산다는 곳처럼 운림산방을 꾸몄다고 한다.

허련 이후에도 이곳에서 아들인 미산 허형(米山 許灐, 1862~1938)과 손자인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7~1987) 등 후손들이 대대로 그의 화풍을 이어갔다. 지금은 허건에 의해 1982년 오늘날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이곳 일대는 역사 문화유산인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과 자연유산인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107호이 있는 첨찰산 등이 어우러져 역사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허련은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 칭송되었는데, 20대에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공재 윤두서의 화첩을 보며 그림을 익혔다. 헌종 5년(1839)에는 초의선사의 소개로 서울로 올라가 김정희에게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았다. 헌종 12년(1846) 왕에게 그림을 바친 후에는 여러 차례 궁중을 드나들며 왕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또한 당대의 명사(名士)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시 짓기와 글 쓰기, 그림 그리기 활동을 지속하였다. 허련의 호는 김정희가 지어준 것인데, 원나라 4대 화가 중 한 사람인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을 ‘대치(大痴)’라 하는데 빗대어 ‘소치’라 하였다고 한다.

영문

Ullimsanbang Villa and Garden, Jindo

Ullimsanbang Villa and Garden were built in 1856 for Heo Ryeon (1809-1892, pen name: Sochi), a painte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o live in and to commemorate his paintings. The fog floating every morning and evening is said to consist of a forest of clouds (?), so it was named Ullimsanbang.

Heo Ryeon who was born in Ssangjeong-ri, Jindo-eup, was renowned for all poetry, painting, and calligraphy. In his 20s, he was taught by Choui (1789-1866), a Buddhist monk of Daeheungsa Temple in Haenam, and practiced painting while looking at the albums of famous painter Yoon Du-seo (1668-1715). In 1839, Choui introduced him to go to Seoul where he received calligraphy classes from the prominent calligrapher Kim Jeong-hui (1786-1856). After 1846, he passed through (?) the royal court several times and painted paintings in front of the king, mastered building close friendships with scholars, wrote poetry, and painted paintings. Heo Ryeon's pen name was given by Kim Jeong-hui and "Seochi" is said to refer to "Daechi (大痴)", which is what Huang Gongwang, one of the four great painters of Yuan China (1271-1368), was called.

In 1856, when Kim Jeong-hui died, Heo Ryeon built a thatched-roof house in his hometown and made an atelier where he spent the rest of his life. According to the records remaining in the literary collections of Heo Ryeon, beautiful flowers and rare trees were planted in the refined garden which was decorated like a place where immortals lived. After this, the descendants of the family lineage such as Heo Ryeon's son, Heo Hyeong (1862-1938), and grandson, Heo Geon (1907-1987), continued the artistic style of Heo Ryeon.

The current Ullimsanbang Villa and Garden were renovated in 1982 by Heo Geon. The area here which is in harmony with Cheomchalsan Mountain where Ullimsanbang Villa and Garden and Evergreen Forest of Ssanggyesa Temple (Natural Monument) are, is a scenic site renowned for its historical and scenic value.

영문 해설 내용

운림산방은 조선시대의 화가인 허련(1809-1892, 호: 소치)이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기 위해 1856년에 지었다.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운림산방이라 이름 붙였다.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난 허련은 시, 그림, 글씨에 모두 뛰어났다. 20대에는 해남 대흥사의 승려 초의(1789-1866)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유명한 화가 윤두서(1668-1715)의 화첩을 보며 그림을 익혔다. 1839년에는 초의의 소개로 서울로 올라가 당대 최고의 서화가인 김정희(1786-1856)에게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았다. 1846년 이후에는 여러 차례 궁중을 드나들며 왕 앞에서 그림을 그렸고,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여 시를 짓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렸다. 허련의 호는 김정희가 지어준 것인데, 원나라 4대 화가 중 한 사람인 황공망(1269-1354)을 ‘대치(大痴)’라 하는 데 빗대어 ‘소치’라 하였다고 한다.

1856년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자, 허련은 고향에 초가를 짓고 화실을 만들어 여생을 보냈다. 허련의 문집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따르면, 큰 정원을 다듬고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를 심어 신선들이 산다는 곳처럼 꾸몄다고 한다. 이후 이곳에서 허련의 아들인 허형(1862-1938)과 손자인 허건(1907-1987) 등 대대로 후손들이 허련의 화풍을 이어갔다.

지금의 운림산방은 허건에 의해 1982년에 정비되었다. 이곳 일대는 운림산방과 쌍계사 상록수림(천연기념물)이 있는 첨찰산 등이 어우러져 역사적, 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