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도호부 관아터
장성도호부 관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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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장성도호부 관아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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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長城都護府 官衙址 |
주소 |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성산리 |
해설문
국문
이곳 장성성산초등학교 일원은 1655년부터 1921년에 군청을 옮기기 전까지 장성(長城)을 다스린 관아1)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장성(長城)이라는 지명은 고려 태조 23년(940)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조선 선조 33년(1600)에는 장성현(長城縣)2)과 진원현(珍原縣)이 합병되어 장성현이라 하였고, 당시 관아는 제봉산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 효종 6년(1655)에 전란3)을 겪으면서 입암산성이 중요한 관방4) 시설로 대두되면서 장성현을 장성도호부5)로 승격하였고, 도호부사6)가 입암산성 수진관7)을 겸하도록 하였다. 이때 관아를 성산으로 옮겼다고 한다.
조선 고종 32년(1895)에는 부(府)에서 군(郡)으로 변경되었고, 1921년에 지금의 영천리로 군청을 옮겼다. 고지도 등의 문헌자료와 학교에서 확인된 지주석8), 건물의 초석9)들은 이 자리가 관아 터였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 관아(官衙): 관리들이 모여 나랏일을 보던 곳
- 현(縣): 조선 시대 지방 행정 구역, 8도(道)-부(府)-대도호부(大都護府)-목(牧)-도호부(都護府)-군(郡)-현(縣)
- 전란(戰亂): 전쟁으로 인한 난리
- 관방(關防): 국경의 방어를 위하여 설치한 요새
- 도호부(都護府):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군사 요충지나 일부 지역에 설치한 지방행정기구
- 도호부사(都護府使): 도호부의 으뜸 벼슬
- 입암산성 수진관(笠巖山城 守鎭官): 입암산성의 수장
- 지주석(支柱石): 홍살문(紅箭門), 당간(幢竿) 등을 세워 고정하기 위해 기둥 하부 양쪽에 놓는 돌
- 초석(礎石): 주초(柱礎)라고도 하며 기둥 밑에 놓여 건물의 하중을 지면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함.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장성성산초등학교 일원은 조선시대인 1655년부터 1921년까지 장성 지역을 다스린 관아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초등학교 주변에서는 관아 건물의 지주석과 초석 등이 발견되어, 이 자리가 관아 터였음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장성’이라는 지명은 고려시대인 940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1600년에는 장성현과 인근의 진원현이 합병되어 장성현이라 하였고, 당시 관아는 제봉산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17세기 들어 여러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장성의 입암산성이 중요한 방어시설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1655년 장성현을 장성도호부로 승격하였는데, 도호부는 군사 요충지에 설치하던 지방행정기구를 말한다. 그리고 이때 장성도호부의 관아를 지금의 성산리 지역에 세웠다고 한다. 1895년에는 장성군이 되었고, 1921년에는 지금의 영천리에 장성군청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