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이씨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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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이씨 신도비
Stele of the Goseong Yi Clan
대표명칭 고성이씨 신도비
영문명칭 Stele of the Goseong Yi Clan
한자 固城李氏 神道碑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488-2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호
지정(등록)일 1973년 8월 31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2016

이 비는 조선 태종(太宗) 때 철성군(鐵城君)에 봉해진 용헌(容軒) 이원(李原)의 아들 이증(李增)의 신도비이다. 세운지 오래되어 비면이 심하게 마멸된 것을 순조(純祖) 18년(1818)에 다시 돌을 깎아 비문의 일부를 개찬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 안동시 월곡면 미질동에 있었으나, 1973년 안동댐의 건설로 인하여 예안면 기사리로 옮겼다가 2000년에 현재의 위치에 다시 옮겼다.

비면의 너비는 86.7cm이며, 비신의 높이는 213cm이다. 비각은 사방 단간의 팔작지붕인데, 둥근 기둥에 2익공(翼工)으로 굴도리를 받쳐 올린 단아한 모양의 집이다. 그 규모와 각 부재의 규격, 익공 조각의 솜씨에서부터 처마허리의 늘씬함과 추녀의 솟음에 이르기까지의 적절한 조화와 아름다움은 이 비각 보존의 필요성을 높여주고 있다. 비 표면에 5행 55자의 제액(題額)이 해서(楷書)로 음각되어 있으며, 비음(碑陰)에는 전체 22행(각행 65자)의 비문이 해서로 음각되어 있다.

2021

신도비란 임금이나 벼슬이 높은 사람의 일생과 업적을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이다. 이 비석은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 번연(蕃延) 이증(李增, 1419~1480)을 기리는 비로 처음 세웠던 비석이 심하게 마멸되어 1818년 비문의 일부를 수정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원래 이증의 재사*인 수다재와 함께 월곡면 미질동에 있었으나,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1974년 예안면 기사리로 옮겼다가 2000년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

이증은 태종의 즉위에 공헌한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세종 때의 좌의정을 지낸 용헌(容軒) 이원(李原, 1368~1429)의 아들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공훈으로 이증은 단종 1년(1453)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단념하였다가 후에 음서*로 진해현감을 지내고 다시 영산현감을 역임하던 중 세조정권에 회의를 느껴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고향인 안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이 신도비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문은 조선시대의 문신 한치응(韓致應, 1760~1824)이 지었고 이가순(李家淳, 1768~1844)이 글씨를 썼다.


  • 재사(齋舍): 묘를 수호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나 사당 옆에 짓는 집.
  • 음서(蔭敍):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을 세웠거나 높은 벼슬을 한 양반의 자손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

영문

  • Stele of the Goseong Yi Clan

2016

This is the stele of Yi Jeung (1419-1480), a civil official of the early Joseon period. The originally erected stele had been severely worn over time. So, in 1818, the present stele was erected in its place with a new epitaph. In 1973, the stele was moved from its original location due to the construction of Andong Dam, and was relocated once again to the present site in 2000.

The body of the stele measures 213 cm in height and 86.7 cm in width. The pavilion for this stele displays elegant architectural style with its hip-and-gable roof and double-wing roof support brackets.

2021

This stele was erected to commemorate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Yi Jeung (1419-1480), the first person of the Goseong Yi Clan to settle in Andong. It is unknown when it was first erected, but the original stele was replaced with a new one in 1818 due to erosion. The stele was originally located in Mijil-dong, but was moved to Gisa-ri in 1974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Andong Dam. It was moved again to its current location in Jeongsang-dong in 2000.

Yi Jeung's father Yi Won was made a meritorious subject for his contributions in the ascent of King Taejong (r. 1400-1418)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o the throne and later served as second state councilor. Yi passed the literary licentiate examination in 1453 and served as a local magistrate through the protected appointment system. After he resigned from office, he returned to Andong where he devoted himself to teaching future generations.

The granite stele consists of a pedestal, body stone, and capstone. The inscription on the body ston was composed by Han Chi-eung (1760-1824) and calligraphed by Yi Ga-sun (1768-1844).


  •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인 이증" + "고향인 안동에서" - 입향조이면 안동이 고향일 수 없어요. 서로 반대되는 말이잖아요... 일단 고향이라는 말을 뺐어요.

영문 해설 내용

2021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인 이증(1419-1480)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처음 세웠던 비석이 심하게 마멸되어, 1818년 비문 일부를 수정하고 지금의 비석을 세웠다. 원래 월곡면 미질동에 있었으나,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1974년 예안면 기사리로 옮겼다가, 2000년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

이증의 아버지 이원(1368-1429)은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왕위에 오르는 데 기여하여 공신이 되었고 이후 좌의정을 지냈다. 이러한 아버지의 공훈으로 이증은 1453년 진사시에 합격한 후 음서제도를 통해 지방 현감을 지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고향인 안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이증의 신도비는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비문은 문신 한치응(1760-1824)이 지었고 이가순(1768-1844)이 글씨를 썼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