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선원강당
2021년 국문집필
2017 국문
이 건물은 화산(花山) 권주(權柱, 1457~1505)가 수학한 자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지은 강당이다. 그러나 확실한 처음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헌종(憲宗) 9년(1843)에 중건한 것이라 한다. 권주는 성종(成宗) 11년(1480)에 급제하여 도승지(都承旨)를 거쳐 충청(忠淸)․경상감사(慶尙監司)를 지냈으며 의정부(議政府) 우참찬(右參贊)에 증직되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집으로 가운데 4칸은 대청이며, 좌우의 각 2칸은 방으로 꾸몄다. 막돌로 허튼층을 쌓은 위에 둥글 넓적한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사각기둥을 세웠다. 권주의 신도비(神道碑)와 비각(碑閣)이 집 오른쪽에 있고, 묘소는 뒷편에 있다.
2021 국문
초안
이곳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인 화산 권주(花山 權柱, 1457~1505)가 수학했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지은 강당(講堂)이다.
안동에서 태어난 권주는 성종 5년(1474)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나, 연산군 10년(1504) 사화(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되었고, 이듬해에 사약을 받아 생을 마쳤다.
이 건물은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알 수 없고, 조선 헌종(憲宗) 9년(1843)에 다시 지어졌다고 전한다.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를 온돌방으로 꾸민 강당과 ‘ㄴ’자형으로 지어진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 강당 앞 건물- 대문채(국가문화유산포털 언급) -> 강당 앞에는 ‘ㄴ’자형의 대문채가 있다. 대문 오른쪽에는 창호 창문을 단 방이 있고, 왼쪽에는 나무판으로 창문을 설치한 마루가 있다. 하나의 지붕으로 연결된 왼쪽 날개채에는 부엌과 작게 툇마루를 단 온돌방이 있다. (블로그 사진 참고 설명 작성 / 이해위해 작성함)
- 권주의 신도비(神道碑)와 비각(碑閣)이 오른쪽에 있고, 묘소는 뒷편에 있다.
1차 수정
선원강당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인 화산 권주(花山 權柱, 1457~1505)가 수학했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지은 강당이다.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고, 헌종 9년(1843)에 다시 지어졌다고 전한다.
권주는 성종 5년(1474)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승정원의 관직을 지내던 중인 성종 13년(1482)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받들고 갔는데, 이 때문에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甲子士禍) 때 파직되고 이듬해 사약을 받아 생을 마쳤다.
강당과 대문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당은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를 온돌방으로 꾸몄다. 강당 뒤편에는 권주의 묘소가 있고, 오른쪽에는 권주를 기리기 위해 숙종 37년(1711)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