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석척재(문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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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석척재) 西齋(夕惕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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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문헌서원 |
해설문
국문
서재는 서원 강당의 서쪽 건물로 원생들이 수학하며 생활하던 공간이다.
서재의 현판인 ‘석척재(夕惕齋)’는 『주역』의 ‘건건석척(乾健夕惕)’에서 유래한 말로 “군자는 낮이나 밤이나 힘쓰고 조심한다”라는 뜻이다. 즉 저녁이 되어도 낮과 같이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재인 석척재는 1611년광해 3 문헌서원이 사액*서원이 되던 1612년에 세웠다. ‘석천재’란 현판은 동춘당 송준길이 썼다고 한다.
문헌서원은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았으나 1969년에 현재의 묘역 근처로 옮겨 복원하고, 다시 2007년~2013년까지 서원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서재도 새롭게 건축되었다
조선 후기에 서원의 원생으로 이름을 올려 군역 등의 의무를 피하려는 사람이 늘어나자 1707년(숙종 33) 사액서원의 서재생을 20명으로 정하고 명단을 뜻하는 ‘교안’에 이름을 기록하게 하였다.
- 사액: 임금이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