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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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8월 18일 (수) 20: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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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당
Dokseodang Hall
대표명칭 독서당
영문명칭 Dokseodang Hall
한자 讀書堂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214-2 낭산



해설문

국문

독서당은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자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이 학문을 닦았던 곳이라 전한다. 건물은 4칸 규모에 팔작지붕이다. 담장 밖에는 철종 원년(1850)에 세워진 유허비(遺墟碑)가 있다.

최치원은 신라 6두품 집안 출신이었다. 신라의 골품제 사회에서 6두품은 아찬(阿飡)* 이상의 벼슬에는 오를 수 없었다. 골품제의 한계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던 6두품들은 당나라 유학의 길을 많이 선택했고, 최치원도 일찍이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18세에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며,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서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이후 헌강왕 10년(884)에 신라로 돌아왔다. 진성여왕 8년(894) 최치원은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진성여왕에게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건의하였다. 진성여왕은 그의 제안대로 개혁을 펼치려하였으나 당시 중앙귀족들로 인해 그의 개혁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최치원은 크게 실망하고 해인사(海印寺)에서 숨어 지내며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 아찬(阿飡): 신라 17관등 가운데 여섯째 등급, 육두품이 오를 수 있었던 가장 높은 관등
  • 빈공과(賓貢科): 중국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실시한 과거
  •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881년(헌강왕 7) 최치원은 그 토벌총사령관인 고변(高騈)의 휘하에 종군하였는데, 황소가 이 격문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침상에서 내려앉았다는 일화가 전할 만큼 뛰어난 문장이었다고 한다. 그의 시문집인 『계원필경(桂苑筆耕)』에 실려 전한다.

영문

Dokseodang Hall

Dokseodang Hall is said to have been the study hall of Choe Chi-won (857-?), a renowned scholar and writer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It is unknown when the study hall was first established, but it appears to have undergone many repairs and reconstructions over the centuries. The building was destroyed by a fire in 2021 and rebuilt anew in ****. In front of the house is a stele erected in 1850 to commemorate the site.

Choe Chi-won was born in Gyeongju. He went to study in Tang China in 868. In 874, he placed first in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for foreigners there and took an official post. In 879, when Huang Chao started a rebellion in China, Choe Chi-won wrote him a well-known manifesto, which made him widely famous as a skillful writer. Later in 885, he came back to Silla and tried to fix the chaotic political situation in the country but did not succeed. Disappointed, he retired from his official post and lived the rest of his life in seclusion at Haeinsa Temple in Hapcheon. He left a multitude of outstanding written pieces and was called the founder of the Korean writing style. He was also later enshrined at the state Confucian shrine (called munmyo in Korean) together with other renowned Confucian scholars.

  • 2021년 4월에 화재로 독서당이 전소되었음. 언제 복원 완료되는지에 따라 붉은색 부분 수정 필요함.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