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북고사 신중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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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그림은 조선 순조 31년(1831)에 전계인(田啓仁) 부부가 남자아이 얻기를 기원하면서 화원(畫員)인 장순(莊旬)등으로 하여금 그리게 한 것이다. 그림의 구도와 채색, 그리고 등장인물의 모습이 짜임새가 있으며, 차분하고도 우아한 수준 높은 작품이다. 그림의 상단에는 보살형의 범천과 제석천 및 여러 권속들이 표현되었으며, 그 아래 한 가운데에는 흰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검을 든 위태천이 칼을 들고 서 있다. 그 주위에 용왕과 사천왕 등 신장(神將)들이 합장을 하거나, 혹은 칼이나 금강저 등을 들고 서 있다. 이 탱화는 작은 화면에 간단하게 인물들을 묘사하여 구성이 단조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신중탱화는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여러 신들을 한 화폭에 모아 그린 그림이다. 신중은 부처나 보살처럼 깨달음을 얻은 존재는 아니지만, 신묘한 능력으로 재앙을 쫓아주며 복을 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 불화는 1831년에 그려진 것으로, 승려 화가인 화순(莊旬), 윤관(允寬), 호묵(護嘿), 민훈(敏訓) 등의 화원들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전계인(田啓仁) 부부가 아들 얻기를 기원하면서 시주하였다. 현재 북고사 극락전 동편 불단 위에 모셔져 있다.
화면 중앙에는 흰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팔에 검을 받친 채 합장한 위태천을 그렸다.
화면 위쪽에는 제석천과 범천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서 있다. 제석천 주위에는 천동과 왕관을 쓴 하늘의 왕[명왕] 2위가 묘사되어 있으며, 범천 주위에는 천녀와 보살 2위가 배치되어 있다.
화면 아래쪽에는 위태천의 권속인 사천왕상과 용왕상을 그렸다.
- 본문 설명 2안
북고사 극락전에 모셔져 있는 이 그림은 1831년 화순(莊旬) 등 4명의 화원이 제작한 것으로, 전계인(田啓仁)이라는 사람과 그의 부인이 득남을 기원하며 시주하였다는 사실이 그림 아래쪽에 기록되어 있다.
화면 중앙에는 흰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합장한 팔에 검을 받친 위태천을 그렸다. 화면 위쪽에는 제석천과 범천, 천동과 천녀, 명왕 2위와 보살 2위가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사천왕과 용왕 등 천룡의 권속들을 묘사했다.
- 문화재청 설명 중에는 ‘마혜수라천왕(摩醯首羅天王), 금강권보살(金剛眷菩薩), 금강색보살(金剛索菩薩), 천녀(天女)’로 설명하고 있음 -> ‘마혜수라천왕(摩醯首羅天王)’은 ‘대자재천(大自在天, 또는 자재천)’이라고도 하는데, 신중도에 묘사되는 경우 3목 8비(三目八臂) 또는 8비로 표현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함.(‘신중도’, 불교신문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69727). 이 그림에서는 제석천과 유사한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므로 지자체 기존 제공 문안에 언급되어 있는 ‘범천’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문안을 작성하였으나, 도상에 대해 한 번 더 확인할 필요 있음.
- 문화재청 설명 중 ‘중앙의 동진보살’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음.
1차 수정
신중탱화는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여러 신인 신중(神衆)을 그린 그림이다. 신중은 부처나 보살처럼 깨달음을 얻은 존재는 아니지만, 신묘한 능력으로 재앙을 쫓아주며 복을 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 불화는 순조 31년(1831)에 그려진 것으로, 승려 화가인 화순(莊旬), 윤관(允寬), 호묵(護嘿), 민훈(敏訓)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전계인(田啓仁)이라는 사람과 그의 부인이 아들 얻기를 기원하면서 시주하였다. 비단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가로 95.5㎝, 세로 125.5㎝이다.
화면은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흰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팔에 검을 든 채 합장한 위태천이 있다. 위쪽에는 제석천과 범천, 천동과 천녀, 명왕 2위와 보살 2위가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사천왕과 용왕을 그렸다. 단조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인물들의 얼굴을 흰색으로 칠하여 화면을 밝게 묘사하는 것은 19세기 전반 전라도 지역의 불화에서 보이는 특징 중 하나이다.
- 그림의 크기에 대한 정보가 자료마다 달라 확인이 필요함.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신중탱화는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여러 신인 신중(神衆)을 그린 그림이다. --> 신중탱화는 ...
- 화면은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흰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팔에 검을 든 채 합장한 위태천이 있다. --> ... 중앙에는 흰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합장한 팔로 검을 받쳐 들고 있는 위태천이 있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문화재 명칭 수정_ 북고사 신중도((北固寺 神衆圖)
- 유물설명에 체계적인 순서가 필요. 예를 들면 불화의 개요와 현상, 제작자와 시주자, 조성의 목적, 화면 설명 등으로 서술할 필요성이 있음
- 화면의 전체 구성이 <실상사 극락전 신중도>(1751)와 유사하여 전대의 도상을 후대에 계승해 제작한 사례임을 밝히면 좋겠음.
- 북고사 극락전에 봉안된 이 불화는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호법선신들을 그린 <신중도>이다. 작품의 크기는 가로 95.5㎝, 세로 125.5㎝ 정도이며 비단 바탕에 색을 올려 완성하였다. 1831년(순조 31) 그림의 제작에 참여한 화승은 화순(莊旬), 윤관(允寬), 호묵(護嘿), 민훈(敏訓) 등이며, 조성의 목적은 시주자 전계인(田啓仁) 부부의 득남기원이다.
화면은 봉황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합장한 형태로 두 팔 위에 금강보저를 올린 위태천을 중심으로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쪽에는 제석천과 제3의 눈을 가진 범천, 천동과 천녀, 명왕 2위와 보살 2위가 좌우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용왕을중심으로 천룡팔부중 4위를 그렸다.
전체적인 화면의 구성이 실상사 극락전 <신중도>(1751)와 유사하여 전대의 도상을 계승하여후대 화승이 작품을 제작한 사실을 살필 수 있다.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이 불화는 극락전 안의 불단을 중심으로 하여 우측인 동편벽에 설치한 신중단 뒷 벽에 다 모셔져 있다.
승려 화가인 화순(莊旬), 윤관(允寬), 호묵(護嘿), 민훈(敏訓) 등이 순조 31년(1831)에 그린 것으로 전계인(田啓仁)과 부인 김씨가 아들 얻기를 기원하면서 시주하여 제작하게 된 것이다. 비단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가로 95.5㎝, 세로 125.5㎝이다.
신중은 본래 인도의 토속신으로, 신묘한 능력으로 재앙을 쫓아주며 복을 주는 존재로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게 된 신이다.
화면은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에는 흰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팔에 검을 든 채 합장한 위태천이 있다. 위쪽에는 제석천과 범천, 천동과 천녀, 명왕 2위와 보살 2위가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사천왕과 용왕을 그렸다. 단조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더, 인물들의 얼굴을 흰색으로 칠하여 화면을 밝게 묘사하는 것은 19세기 전반 전라도 지역 불화의 특징이다.
- 이 불화는 극락전 안의 불단을 중심으로 하여 우측인 동편벽에 설치한 신중단 뒷 벽에 다 모셔져 있다.
2차 수정
신중탱화는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여러 신인 신중(神衆)을 그린 그림이다. 신중은 신묘한 능력으로 재앙을 쫓아주며 복을 주는 존재로 여겨진다.
북고사 극락전에 봉안된 이 불화는 순조 31년(1831)에 그려진 것이다. 승려 화가인 화순(莊旬), 윤관(允寬), 호묵(護嘿), 민훈(敏訓) 등이 제작에 참여하였으며, 전계인(田啓仁)과 부인 김씨가 아들 얻기를 기원하면서 시주하였다. 비단에 채색하였고, 크기는 가로 95.5㎝, 세로 125.5㎝이다.
화면은 상하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흰 깃털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합장한 팔로 검을 받쳐 들고 있는 위태천이 있다. 위쪽에는 제석천과 범천, 천동과 천녀, 명왕 2위와 보살 2위가 대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사천왕과 용왕을 그렸다. 단조로우면서도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있으며, 인물들의 얼굴을 흰색으로 칠하여 화면을 밝게 묘사하는 것은 19세기 전반 전라도 지역 불화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