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운림산방
진도 운림산방 Ullimsanbang Villa and Garden, Jin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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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진도 운림산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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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Ullimsanbang Villa and Garden, Jindo |
한자 | 珍島 雲林山房 |
주소 |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사천리) |
지정(등록) 종목 | 명승 제80호 |
지정(등록)일 | 2011년 8월 8일 |
분류 | 자연유산/명승/역사문화경관 |
수량/면적 | 1,367,620㎡ |
웹사이트 | 진도 운림산방,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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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진도 운림산방은 조선말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小痴) 허련(許鍊 1808~1893)선생이 말년에 그림을 그렸던 화실로 첨찰산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산골에 아침 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82년 소치의 손자인 남농 허건이 복원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선생의 본관은 양천, 자는 마힐, 호는 소치이며 초명(初名)은 허유이다. 20대에 해남 대둔사(현 대흥사)의 초의선사(草衣禪師)에게 학문을 익히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문하에서 서화를 배워 일세를 풍미(風靡)하는 남종화의 대가가 되었으며 시(詩), 서(書), 화(畵)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는 칭송을 받은 그의 작품은 강한 느낌을 주는 갈필(마른붓질) 산수가 주를 이루지만, 노송·노매·모란·괴석 등 문인화 또한 일품이다.
선생은 헌종(憲宗)의 총애를 받아 임금의 벼루에 먹을 갈아 왕을 상징하는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는 모란을 그려 바쳤고, 왕실 소장의 고서화(古書畵)를 평(評)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추앙받았다. 대표작으로 59세(1866년)에 운림산방을 그린 선면산수도와 스승 김정희의 초상, 묵모란, 파초 등이 있으며, 꿈처럼 지나간 세월을 기록한 몽연록(夢緣錄)이 수록된 소치실록(小痴實錄)이라는 자서전을 남겼다.
※보배섬 진도에 있는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의 화맥이 200여년 동안 5대에 걸쳐 9인의 화가를 배출하였고, 선생의 화혼은 후손들을 통하여 지금도 찬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이 지구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살아있는 미술관”이다.
수정 국문
초고
운림각(雲林閣)이라고도 하며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쌍계사 옆에 위치한다. 소치 허련(小痴 許鍊, 1808~1893)은 1856년 9월 스승인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자 고향에 내려와 초가를 짓고 이름은 운림각으로 지었고 거실은 묵의헌으로 지었다.
서화예술이 발달한 진도에서도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소치 허련은 당나라 남종화와 수묵산수화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서 허유로 개명하였다.
허련은 순조 9년(1809)에 진도읍 쌍정리에서 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가 있었는데 28세부터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기거하던 초의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으면서 녹우당의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화첩을 보며 공부를 하였다.
허련은 여러 그림 중에서도 특히 산수화에 뛰어났는데 「선면산수도」(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가 대표작으로 꼽히며 『몽연록』(夢宴錄) 등 『소치실록』을 써서 남겼다.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진도 운림산방 (珍島 雲林山房),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53600800000
- 진도 운림산방[ 珍島 雲林山房 ], 두산백과
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767261
- 운림산방, 답사여행의 길잡이 5-전남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058190&cid=42840&categoryId=42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