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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매향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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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7일 (금) 13:1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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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매향 암각
삼천포 매향암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삼천포 매향 암각
한자 三千浦 埋香 岩刻
주소 경상남도 사천시 향촌동 산46-1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8호
지정(등록)일 1993년 1월 8일
분류 유물/일반조각/암벽조각/암각화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삼천포 매향암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바위는 1418년(태종 18)에 승려와 신도들이 향을 묻었다는 매향(埋香)의 사연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향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침향(沈香)이다. 이것은 향나무를 개펄에 묻어둔 다음,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물위에 떠오른 것을 말한다. 이 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쇠처럼 단단해 쇳소리가 난다. 또 이것은 약효보다는 향의 신성함 때문에 약재로도 쓰였다. 그리하여 침향을 만들기 위한 과정인 매향은 그 자체로써 신성한 의식이었던 셈이다.

이런 매향 의식은 이후 민중의 고통을 구원해 주는 미륵(彌勒) 신앙과 결부되어 바닷가의 여러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개펄에 묻어둔 향나무가 물위로 떠오르는 형상은 민중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나는 것처럼 여겨졌다고 보여 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매향 유적은 대부분 고려 말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 시기에는 왜구들의 잦은 침략으로 해안 지방 민중들의 고통이 극심하였다. 이 때문에 이런 지역의 민중들은 향을 묻으며 미륵 구세주의 출현을 염원하였던 것이다. 이곳의 매향 기록도 조선 초기의 것으로 해안 지방을 침범하는 왜구를 미륵 부처의 힘으로 막으려는 민중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이 매향 의식이 승려들이 아니라 민중이 함께 행한 종교의식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기록은 당시 민간 신앙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매향이란 내세의 복을 염원하면서 향(香)을 묻는 의식을 말한다. 매향 의식을 치르고 나면 의식의 과정, 시기, 관련 집단, 발원의 내용 등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향토산 중턱의 자리한 가로 6.3m, 세로 4.3m 크기의 이 바위 하단에는 23행 174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1993년 향토사 연구자 문옥상에 의해 매향 의식과 관련한 유적임이 밝혀졌다. 마모로 인해 일부 글자는 판독이 어렵고, 누군가 탁본을 하면서 사용한 먹물의 얼룩이 바위 전체에 남아있는 상태이다.

여기에는 조선 태종 17년(1417)과 이듬해에 치러진 두 차례의 매향 의식이 기록되어 있고, 행사에 참여했던 승려와 시주자 등 30여 명의 이름이 남아있으며, 조선 태종 18년(1418)에 조성되었다.

매향 의식은 민중의 고통을 구원해 준다는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리는 미륵 신앙과 결합되어 바닷가에 위치한 여러 지역에서 유행했다. 이 시기는 왜구의 횡포가 극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때였으므로, 매향을 통해 해안 지역의 불안한 민심을 달랬던 것으로 보인다.

*<정의 좀 더 상세하게 쓰면 어떨지> 매향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갯벌에 향나무를 묻어 침향(沈香)을 만드는 과정으로, 내세의 복을 염원하는 미륵 신앙과 결합하면서 일종의 의식으로 여겨져 종교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매향 의식을 치르고 나면 의식의 과정과 시기, 관련된 사람들, 발원 내용 등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 ‘매향비’로 알려지게 된 것이 1981년 정인진(2020년 사천신문 내용)에 의한 것인지, 1993년 향토사 연구자 문옥상(민백/2013 뉴스사천 내용)에 의해서인지 확인 필요함.
  • 이 바위는 이 지역에서 ‘처녀바위’라고 일컫는 것으로, 주위의 나무를 베어 그 바위가 드러나면 동네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매향은 향 중에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침향(沈香)’을 만드는 과정이다. 침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고 쇠처럼 단단하다고 하는데, 당시 사람들은 향나무를 묻고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침향이 된 뒤에는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르듯 스스로 물위로 떠오른다고 믿었다. 매향은 미륵 신앙과 결합되어 구원에 대한 소망의 매개 역할을 하는 침향을 만드는 신성한 의식으로 여겨졌다.

1차 수정

매향암각은 향나무를 묻는 매향의식을 치른 뒤 그 내용을 바위에 새겨 기록한 것이다.

향나무를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오랫동안 묻어두면, 강철처럼 단단해져 물에 띄우면 가라앉는다는 침향(沈香)이 된다. 침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고 약재로서의 효용도 높아 특히 귀하게 여겨졌다. 침향을 만드는 과정인 매향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의식이었으며,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통해 현세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백성들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향포산 중턱에 자리한 가로 6.3m, 세로 4.3m 크기의 이 바위 하단에는 23행 174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바위 표현이 닳아 일부 글자는 알아보기가 어렵고, 무분별한 탁본으로 인해 바위 전체에 먹물 얼룩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판독이 가능한 부분을 풀어보면 이 기록은 조선 태종 18년(1418)에 새겨진 것으로, 태종 17년(1417)과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매향의식이 거행되었음을 기록하고 전·현직 지방관리, 승려, 시주자 등 당시 행사에 참여한 30여 명의 이름을 적었다.

문맥요소

No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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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옥상 Actor 문옥상(1945-) 2018년 73세(검색자료) ; https://gyeongsang.kr/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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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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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삼천포 매향 암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113802880000 → 매향 의식을 치른 후 그 내용을 바위에 새겨놓은 것이다. 매향의식이란 향나무를 땅에 묻는 민간 불교의식을 이르는 것으로, 향나무를 통해 소원을 비는 자와 미륵불이 연결되기를 바라는 미륵신앙의 한 형태이다. 매향비는 보통 바닷물과 계곡물이 만나는 지점을 그 적격지로 하여 세워두며, 14∼15세기에 주로 세웠다. 이 시기는 왜구의 침략이 잦았던 때로, 이러한 의식을 통하여 해안지역의 불안한 민심을 달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개는 의식을 행한 후 비를 세워두는 것이 보통이나 이렇듯 바위에 새겨두기도 한다. 향토산 중턱의 처녀바위라 불리우는 곳에 새겨 놓은 이 기록은 조선 전기 태종 18년(1418) 승려와 신도들이 기록한 것으로, 아래로 하향천이 흐르고 바닷물이 드나들고 있어 지리적인 조건도 맞아 떨어진다. 내용에는 1417년, 1418년 두 차례에 걸쳐 수륙무차대회(水陸無遮大會:바다와 육지에 떠도는 영혼을 위해 올리는 제사)를 베풀어 향나무를 묻은 사실이 적혀 있고 승려 및 여러 시주자들의 명단을 실었다. 30명 정도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으로 보아 비록 불교의식이긴 하나 승려와 민간이 공동으로 행한 대중행사였던 것으로 보인다.
  • 사천 흥사리 매향비 항목 참조 → 매향이란 내세의 복을 염원하면서 향(香)을 묻는 의식을 말한다. 매향 의식을 치르고 나면 의식의 과정, 시기, 관련집단, 발원의 내용 등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
  • 삼천포 매향 암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6888 → 가로 6m 세로 4m 정도의 자연암석에 암각되어 있다. 이 바위의 북벽 가로 140㎝, 세로 80㎝ 정도의 평면에 모두 23행 174자가 새겨져 있는데, 주민들은 이 암각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여 다만 구전으로 ‘향포산 처녀바위 글’이라 불러왔다 한다. 이 암각문이 매향비로 학계에 밝혀진 것은 1993년 향토사연구자인 문옥상에 의해서였다.삼천포 향촌 암각매향비는 1418년(태종 18)에 건립된 것으로 자연 암벽의 편평한 곳에 적어 매향의 주도자ㆍ연대ㆍ위치ㆍ매향집단ㆍ발원자 등 모두를 알 수 있다. 비문의 1∼8행이 발원문이고 9∼22행은 참여자, 23행은 주관한 승려명으로 구분할 수 있고, 매향처는 구량량(仇良梁)의 용두머리로 밝혀진다.
  • 향촌동 매향암각(香村洞埋香岩刻), 사천시사 제11편 문화재, 향토역사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 http://jdpaper.ciclife.co.kr/sub.html?w=body_01_01&style=01&idx=951&num=3509&search=&_view=view → 가. 현황 : 사천시 향촌동 하향마을 하향천(下香川) 건너에 해발 70∼80m의 향포산(香浦山)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의 중턱 숲 사이에 6.5×4.5m의 암석이 수직 암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 암면의 하단 1.4×0.8m 범위내에 23행 174자의 음각으로 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이 바위는 이 지역에서 ‘처녀바위’라고 일컫는 것으로, 주위의 나무를 베어 그 바위가 드러나면 동네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930년대 항만 조성과 철도 부설로 인해 이 일대가 매립되면서 주변의 지형이 많이 바뀌기는 하였으나 소향천(小香川)은 그대로 흐르고 있는데, 보통 매향비(埋香碑)가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는 통설과 잘 부합되고 있다. 현재 바위면은 자연 마모로 일부 글자는 판독이 곤란하기도 하고, 누군가 탁본을 하면서 먹물을 바위면에 끼얹어 전체가 얼룩이 져 있는 상태이다. / 나. 암각문의 풀이 : 판독 가능한 비문을 풀이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영락 무술 2월(1418년, 태종 18년 2월)에 비를 세운다. 우리 시방(十方)시주 들은 각기 다른 몸과 마음을 닦아 구라량(仇良梁) 등지와 용두초지(와룡사의 초입지)에서 정유년(1417) 2월 15일과 무술년(1418) 2월 15일에 수륙무차대회(불가에서 바다와 육지에 있는 고혼과 아귀를 위하여 올리는 재)를 베풀고 이 침향포(沈香浦)에서 각기 향목(香木)을 취하여 침향(沈香)한 연후에 여러 비구(比丘)와 시방(十方) 시주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적는다. (이하 여러 시방의 시주 및 승려의 이름)”
  • 침향 - 그 깊은 향의 편린, 매향비, 뉴스사천, 2013.12.26. https://www.news4000.com/news/articleView.html?idxno=15958 → 삼천포매향암각과 간련해서 인터넷 백과사전을 뒤져봤더니 재미있는 내용이 참 많네요. 우선 23행 174자로 되어 있고 태종 18년(1418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요, 처음에는 이 암각비문을 해석하지 못해서 ‘향포산 처녀바위 글’이라 불렀고 향토사연구자인 문옥상님에 의해서 밝혀졌다고 합니다. 매향을 한 곳은 구량량(仇良梁)의 용두머리라고 하는데, 구량량은 선사시대 도시국가였던 지금의 늑도라고 합니다.
  • 사천의 역사와 유적지를 찾아서 삼천포 향촌동 매향암각(埋香巖角)(9), 사천신문 2020.4.2. http://www.4000news.com/gisa/view.html?number=27&hosu=1326ho → 이 암각문이 매향비로 알려진 것은 1981년 향토사학자인 작고하신 삼천포여고 정인진 선생의 노력으로(?????확인 필요한 부분.) 1993년 1월8일 경상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288호로 지정되었다. 이 동내의 사람들은 처녀바위가 동내에서 보이면 동내가 망한다고 하여 매향암각 앞에 많은 잡목을 심어 바위가 보이지 않게 하였다고 한다. 진삼선이 생기고 철도역이 세워지면서 처녀바위 옆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버리고 역 청사도 사라지고 처녀바위가 있던 동네는 허허 벌판처럼 되어 있다. 지금은 매향암각으로 올라가는 곳에는 구름다리와 나무 테크로 관람객이 편안히 답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 있었다.
  • “미륵불 세계에 태어나기 위한 매향(埋香) - 사천 매향비와 향촌동 매향암각”, 경남·부산·울산 문화유산 이야기 여행, 문화재청. https://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63943&bbsId=BBSMSTR_1222&mn=NS_03_08_03&ccbaCpno=1123806140000&regionGbn=38&pageUnit=10&pageIndex=1&rnum=1
  • 매향, 우리역사넷, 국사편찬위원회. http://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treeId=0211&levelId=tg_002_1110&ganada=&pageUnit=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