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삼천포 매향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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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바위는 1418년(태종 18)에 승려와 신도들이 향을 묻었다는 매향(埋香)의 사연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향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침향(沈香)이다. 이것은 향나무를 개펄에 묻어둔 다음,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물위에 떠오른 것을 말한다. 이 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쇠처럼 단단해 쇳소리가 난다. 또 이것은 약효보다는 향의 신성함 때문에 약재로도 쓰였다. 그리하여 침향을 만들기 위한 과정인 매향은 그 자체로써 신성한 의식이었던 셈이다.

이런 매향 의식은 이후 민중의 고통을 구원해 주는 미륵(彌勒) 신앙과 결부되어 바닷가의 여러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개펄에 묻어둔 향나무가 물위로 떠오르는 형상은 민중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나는 것처럼 여겨졌다고 보여 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매향 유적은 대부분 고려 말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 시기에는 왜구들의 잦은 침략으로 해안 지방 민중들의 고통이 극심하였다. 이 때문에 이런 지역의 민중들은 향을 묻으며 미륵 구세주의 출현을 염원하였던 것이다. 이곳의 매향 기록도 조선 초기의 것으로 해안 지방을 침범하는 왜구를 미륵 부처의 힘으로 막으려는 민중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이 매향 의식이 승려들이 아니라 민중이 함께 행한 종교의식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기록은 당시 민간 신앙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매향이란 내세의 복을 염원하면서 향(香)을 묻는 의식을 말한다. 매향 의식을 치르고 나면 의식의 과정, 시기, 관련 집단, 발원의 내용 등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향토산 중턱의 자리한 가로 6.3m, 세로 4.3m 크기의 이 바위 하단에는 23행 174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1993년 향토사 연구자 문옥상에 의해 매향 의식과 관련한 유적임이 밝혀졌다. 마모로 인해 일부 글자는 판독이 어렵고, 누군가 탁본을 하면서 사용한 먹물의 얼룩이 바위 전체에 남아있는 상태이다.

여기에는 조선 태종 17년(1417)과 이듬해에 치러진 두 차례의 매향 의식이 기록되어 있고, 행사에 참여했던 승려와 시주자 등 30여 명의 이름이 남아있으며, 조선 태종 18년(1418)에 조성되었다.

매향 의식은 민중의 고통을 구원해 준다는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리는 미륵 신앙과 결합되어 바닷가에 위치한 여러 지역에서 유행했다. 이 시기는 왜구의 횡포가 극심하고, 사회가 혼란하던 때였으므로, 매향을 통해 해안 지역의 불안한 민심을 달랬던 것으로 보인다.

*<정의 좀 더 상세하게 쓰면 어떨지> 매향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갯벌에 향나무를 묻어 침향(沈香)을 만드는 과정으로, 내세의 복을 염원하는 미륵 신앙과 결합하면서 일종의 의식으로 여겨져 종교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매향 의식을 치르고 나면 의식의 과정과 시기, 관련된 사람들, 발원 내용 등을 기록한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 ‘매향비’로 알려지게 된 것이 1981년 정인진(2020년 사천신문 내용)에 의한 것인지, 1993년 향토사 연구자 문옥상(민백/2013 뉴스사천 내용)에 의해서인지 확인 필요함.
  • 이 바위는 이 지역에서 ‘처녀바위’라고 일컫는 것으로, 주위의 나무를 베어 그 바위가 드러나면 동네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매향은 향 중에 가장 으뜸으로 여기는 ‘침향(沈香)’을 만드는 과정이다. 침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고 쇠처럼 단단하다고 하는데, 당시 사람들은 향나무를 묻고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침향이 된 뒤에는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르듯 스스로 물위로 떠오른다고 믿었다. 매향은 미륵 신앙과 결합되어 구원에 대한 소망의 매개 역할을 하는 침향을 만드는 신성한 의식으로 여겨졌다.

1차 수정

매향암각은 향나무를 묻는 매향의식을 치른 뒤 그 내용을 바위에 새겨 기록한 것이다.

향나무를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오랫동안 묻어두면, 강철처럼 단단해져 물에 띄우면 가라앉는다는 침향(沈香)이 된다. 침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고 약재로서의 효용도 높아 특히 귀하게 여겨졌다. 침향을 만드는 과정인 매향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의식이었으며,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통해 현세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백성들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향포산 중턱에 자리한 가로 6.3m, 세로 4.3m 크기의 이 바위 하단에는 23행 174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바위 표현이 닳아 일부 글자는 알아보기가 어렵고, 무분별한 탁본으로 인해 바위 전체에 먹물 얼룩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판독이 가능한 부분을 풀어보면 이 기록은 조선 태종 18년(1418)에 새겨진 것으로, 태종 17년(1417)과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매향의식이 거행되었음을 기록하고 전·현직 지방관리, 승려, 시주자 등 당시 행사에 참여한 30여 명의 이름을 적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기존 문안에 비해 내용이 간결해졌으면서도 객관적인 자료(바위 크기, 글자 수 및 내용))가 추가됨으로써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추가 수정할 부분이 없어 보입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매향의식을 치룬 뒤 그 내용을 → 매향의식을 치룬 내용을
    • 바위 표현이 닳아 일부 글자는 → 오랜 세월로 인해 바위 표면이 닳아 일부 글자는
    • 행사에 참여한 30여명의 이름을 적었다.→ 행사에 참여한 30여명의 이름을 기록하였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2차 수정

매향암각은 향나무를 묻는 매향의식을 치른 내용을 바위에 새겨 기록한 것이다.

향나무를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오랫동안 묻어두면, 강철처럼 단단해져 물에 띄우면 가라앉는다는 침향(沈香)이 된다. 침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고 약재로서의 효용도 높아 특히 귀하게 여겨졌다. 침향을 만드는 과정인 매향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의식이었으며,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통해 현세의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자 하는 백성들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향포산 중턱에 자리한 가로 6.3m, 세로 4.3m 크기의 이 바위 하단에는 23행 174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로 인해 바위 표면이 닳아 일부 글자는 알아보기가 어렵고, 무분별한 탁본으로 인해 바위 전체에 먹물 얼룩이 남아있는 상태이다. 판독이 가능한 부분을 풀어보면 이 기록은 조선 태종 18년(1418)에 새겨진 것으로, 태종 17년(1417)과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매향의식이 거행되었음을 기록하고 전·현직 지방관리, 승려, 시주자 등 당시 행사에 참여한 30여 명의 이름을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