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만대헌
안동 만대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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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만대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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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東 晩對軒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리 359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7호 |
지정(등록)일 | 1992년 7월 18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안동 만대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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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옥봉(玉峰) 권위(權暐, 1552~1630)가 40세 되던 해인 조선 선조(宣祖) 24년(1591)에 수학과 강학을 위해 지은 것이다. 옥봉은 선조 34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와 호조의 정랑을 역임하였다.
이 건물은 전체 ‘ㄱ’자형 구조로 왼쪽에 온돌방을 두고 오른쪽에 우물마루를 두었다. 온돌방은 2칸이 있으며 그 뒷면에는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을 설치하였다. 온돌방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수정 국문
초고
만대헌은 조선시대의 문신 권위(權暐, 1552-1630)가 조선 선조(宣祖) 24년(1591)에 학문 수양과 강학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권위는 안동 출신으로 선조 34년(1601) 50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건물의 왼쪽에는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마루방이 있으며, 온돌방 앞으로 툇마루를 내어 ‘ㄱ’자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툇마루의 두 면에는 난간을 둘렀고, 온돌방 뒷면에는 채광을 위한 창이 나 있으며, 마루방은 나무 판재로 벽을 세웠다. 마루 위에는 임진왜란 당시 원병으로 조선에 왔던 명나라 장수 주원조(朱元兆)와 주고 받은 시문을 새긴 판을 걸었다.
건물 출입구에 걸려있는 현판은 명필로 이름난 권위의 동생 권오(權晤, 1565-1649)의 글씨이다. 만대헌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만대헌은 현재 도계서원(道溪書院) 경내 동편에 자리하고 있다. 도계서원은 숙종 13년(1687)에 권위의 제향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워졌다. 1868년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8년 서원으로 승격해 만대헌의 옛 터에 다시 세웠다.
만대헌 이름 유래 ; 두보의 시구 ‘푸른 절벽은 저물녘에 마주하기 잘 어울리네[翠屛宜晩對]’에서 인용한 것이다. / 시 제목 <백제성루(白帝城樓)>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ID | Class | Label | Descrip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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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헌 | Place | 만대헌 | |
권위 | Actor | 권위(權暐,_1552-1630) | |
권오 | Actor | 권오(權晤,_1565-1649) | |
두보 | Actor | 두보(杜甫,_712-770) | |
만대헌_현판 | Object | 만대헌_현판 | |
도계서원 | Place | 도계서원 | |
주원조 | Actor | 주원조(朱元兆) | |
만대헌_시판 | Object | 만대헌_시판 | |
백제성루 | Record | 백제성루(白帝城樓) | |
임진왜란 | Event | 임진왜란(1592) | 주원조는 임진왜란 당시 파견된 명나라 장수이다. |
Links
Source | Target | Relation |
---|---|---|
만대헌 | 권위 | constructor |
만대헌 | 만대헌_현판 | hasPart |
만대헌_현판 | 권오 | calligrapher |
권오 | 권위 | hasBrother |
만대헌 | 도계서원 | currentLocation |
만대헌 | 백제성루 | isNamesakeOf |
백제성루 | 두보 | writer |
만대헌 | 만대헌_시판 | hasPart |
만대헌_시판 | 주원조 | isRelatedTo |
주원조 | 임진왜란 | participatesIn |
권위 | 도계서원 | isEnshrinedIn |
참고자료
- 안동의 문화재, 도계서원(道溪書院)과 만대헌(晩對軒), 겨울섬, 개인 블로그, 2021년 3월 7일 https://gotn.tistory.com/945 → 도계서원, 만대헌 대략적인 정보 확인 ; 건물의 전체적인 구성은 "ㄱ"자형으로 왼쪽에는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옥마루를 깔았으며, 원래 온돌방은 1칸으로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방 사이에 문틀이 설치되어 있고, 마루 위쪽에는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수 주원조와 화답한 시문이 걸려 있으며, 동생인 권오가 쓴 "만대헌(晩對軒)" 현판이 있습니다.
- 안동시 공식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ndongcity00/221513691266 → 만대헌 이름 유래 ; 두보의 시구 ‘푸른 절벽은 저물녘에 마주하기 잘 어울리네[翠屛宜晩對]’에서 인용한 것이다. / 시 제목 <백제성루(白帝城樓)>
- 권위,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front/dirSer/ppl/pplView.aks?pplId=PPL_6JOb_A1552_1_0027310&curSetPos=0&curSPos=0&category=dirSer&isEQ=true&kristalSearchArea=B
- 안동 만대헌, 안동관광 https://www.tourandong.com/public/search/default.cshtml?q=%EB%A7%8C%EB%8C%80%ED%97%8C → 온돌방의 측면에는 2짝세살문을, 후면에는 광창을 설치하였는데 전면의 문틀에는 가운데설주 홈이 남아있으며, 온돌방과 대청사이에는 3분합과 2분합들어열개문을 설치하였다. 정면 어간에는 양개 띠장널문을, 정면의 우측칸과 우측면 그리고 후면에는 각 간마다 양개 띠창널창을 설치하였는데, 어칸 중앙의 문틀을 제외한 5개소에는 각각 가운데설주를 세웠으며, 문틀과 기둥사이에는 모두 판벽으로 마감하였다. 어칸 정면의 띠장널문과 우측면의 띠장널창 상부에는 세살을 끼웠는데, 이는 폐쇄적 공간에서의 채광을 고려한 것으로 보여진다. 막돌허튼층쌓기하여 2단으로 구성한 기단 위에 덤벙주초를 놓고 방주를 세웠는데 주두 상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이 도리와 장혀만 걸었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형성하였으나, 좌측 전면의 온돌방 상부부분의 지붕은 박공을 이루었다. 구조수법이나 가운데설주 등이 건립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