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만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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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옥봉(玉峰) 권위(權暐, 1552~1630)가 40세 되던 해인 조선 선조(宣祖) 24년(1591)에 수학과 강학을 위해 지은 것이다. 옥봉은 선조 34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예조와 호조의 정랑을 역임하였다.

이 건물은 전체 ‘ㄱ’자형 구조로 왼쪽에 온돌방을 두고 오른쪽에 우물마루를 두었다. 온돌방은 2칸이 있으며 그 뒷면에는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을 설치하였다. 온돌방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수정 국문

초고

만대헌은 조선시대의 문신 권위(權暐, 1552-1630)가 조선 선조(宣祖) 24년(1591)에 학문 수양과 강학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권위는 안동 출신으로 선조 34년(1601) 50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건물의 왼쪽에는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마루방이 있으며, 온돌방 앞으로 툇마루를 내어 ‘ㄱ’자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툇마루의 두 면에는 난간을 둘렀고, 온돌방 뒷면에는 채광을 위한 창이 나 있으며, 마루방은 나무 판재로 벽을 세웠다. 마루 위에는 임진왜란 당시 원병으로 조선에 왔던 명나라 장수 주원조(朱元兆)와 주고 받은 시문을 새긴 판을 걸었다.

건물 출입구에 걸려있는 현판은 명필로 이름난 권위의 동생 권오(權晤, 1565-1649)의 글씨이다. 만대헌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시구에서 따온 것이다.

만대헌은 현재 도계서원(道溪書院) 경내 동편에 자리하고 있다. 도계서원은 숙종 13년(1687)에 권위의 제향을 모시기 위해 처음 세워졌다. 1868년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8년 서원으로 승격해 만대헌의 옛 터에 다시 세웠다.

만대헌 이름 유래 ; 두보의 시구 ‘푸른 절벽은 저물녘에 마주하기 잘 어울리네[翠屛宜晩對]’에서 인용한 것이다. / 시 제목 <백제성루(白帝城樓)>

1차 수정

만대헌은 조선시대의 문신 권위(權暐, 1552~1630)가 선조 24년(1591)에 학문 수양과 강학을 위해 지은 건물이다. 권위는 안동 출신으로 선조 34년(1601) 50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건물의 왼쪽에는 온돌방이 있고 오른쪽에는 마루방이 있으며, 온돌방 앞으로 툇마루를 내어 ‘ㄱ’자형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툇마루의 두 면에는 난간을 둘렀고, 온돌방 뒷면에는 채광을 위한 창이 나 있으며, 마루방은 나무 판재로 벽을 세웠다. 마루 위에는 임진왜란 당시 원병으로 조선에 왔던 명나라 장수 주원조(朱元兆)와 주고받은 시문을 새긴 판을 걸었다.

건물 출입구에 걸려 있는 현판은 명필로 이름난 권위의 동생 권오(權晤, 1565~1649)의 글씨이다. 만대헌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 중 ‘푸른 절벽은 저물녘에 마주하기 잘 어울리네[翠屛宜晩對]’라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