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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매향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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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매향암각
삼천포 매향암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삼천포매향암각
한자 三千浦埋香岩刻
주소 경상남도 사천시 향촌동 산46-1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8호
지정(등록)일 1993년 1월 8일
분류 유물/일반조각/암벽조각/암각화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삼천포 매향암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바위는 1418년(태종 18)에 승려와 신도들이 향을 묻었다는 매향(埋香)의 사연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향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침향(沈香)이다. 이것은 향나무를 개펄에 묻어둔 다음, 시간이 지나면서 저절로 물위에 떠오른 것을 말한다. 이 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쇠처럼 단단해 쇳소리가 난다. 또 이것은 약효보다는 향의 신성함 때문에 약재로도 쓰였다. 그리하여 침향을 만들기 위한 과정인 매향은 그 자체로써 신성한 의식이었던 셈이다.

이런 매향 의식은 이후 민중의 고통을 구원해 주는 미륵(彌勒) 신앙과 결부되어 바닷가의 여러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개펄에 묻어둔 향나무가 물위로 떠오르는 형상은 민중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나는 것처럼 여겨졌다고 보여 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매향 유적은 대부분 고려 말 조선 초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 시기에는 왜구들의 잦은 침략으로 해안 지방 민중들의 고통이 극심하였다. 이 때문에 이런 지역의 민중들은 향을 묻으며 미륵 구세주의 출현을 염원하였던 것이다. 이곳의 매향 기록도 조선 초기의 것으로 해안 지방을 침범하는 왜구를 미륵 부처의 힘으로 막으려는 민중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이 매향 의식이 승려들이 아니라 민중이 함께 행한 종교의식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기록은 당시 민간 신앙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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