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성씨 열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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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성씨 열녀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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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창녕 성씨 열녀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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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昌寧 成氏 烈女閣 |
해설문
국문
창녀 성씨 열녀각은 창녕 성씨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 24년(1887)에 나라에서 세운 누각이다.
창녕 성씨는 문화 류씨(文化柳氏) 문중의 류풍렬(柳豊烈)의 아내이다. 어느 날 남편이 산에 올라갔다가 호랑이를 만나 물려 죽을 지경이 되자 마을 장정 수십 명이 그를 구하기 위해 몰려갔으나 성난 호랑이의 울음소리에 놀라 감히 아무도 달려들지 못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부인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앞으로 나아가니 호랑이가 그 용기에 감동하여 슬그머니 남편을 놓고 달아났다. 이후 부인은 남편의 시체를 수습하고 돌아왔다.
당시 임신 중이던 부인은 배를 가리키며 “내가 만일 남자아이를 낳으면 류씨 가문의 대를 잇게 할 것이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마땅히 남편을 따라 죽을 것이다.”라고 맹세하였다. 그 후 부인은 여자아이를 낳게 되자 아이를 낳은 지 7일째 되는 날 밤 틈을 타서 물에 빠져 죽었다. 그 이튿날 뇌성벽력이 일더니 물 가운데에서 홀연히 고운 빛깔의 무지개가 일어나 마을 앞을 가로질러 뻗치었다. 부인의 시신을 물에서 건져 내고 보니 살았을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이와 같이 남편을 섬기는 부인의 마음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에 나라에서는 고종 28년(1891) 그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열녀문을 세워 표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