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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북산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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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북산서사
경주 북산서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 북산서사
한자 慶州 北山書社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호명큰골길 33-40 (강동면, 북산서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13호
지정(등록)일 2013년 9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1곽(6동)
웹사이트 경주 북산서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건물은 호계 이을규(虎溪 李乙圭, 1508~1546)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순조 30년(1830)에 건립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된 후 1967년 강당과 사당 등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이을규는 1535년 문과에 급제하여 서장관*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이후 경산현령, 초계군수 등을 역임하며 청백리(淸白吏)*로 선발되었고, 1539년과 1541년에도 중국을 왕래하여 중국 황제로부터 황금화로(黃金火爐)를 하사받기도 하였다. 1542년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한 후 이언적(李彦迪)을 따라 학문을 강론하였다.

문간채인 공심문을 지나면 강당인 포요당(抱瑤堂)이 있는데 4칸 중 중앙의 2칸은 대청을 두고 양쪽으로 방 한 칸을 들였다. 사당인 지경묘(持敬廟)는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 서장관(書狀官): 중국에 보내던 부경사행의 일행인 정사(正使)·부사(副使)·기록관(記錄官) 등의 3사신 중 기록관으로 외교문서에 관한 직무를 분담하였다.
  • 청백리(淸白吏): 관직 수행 능력과 청렴(淸廉)·근검(勤儉)·도덕(道德)·경효(敬孝)·인의(仁義) 등의 덕목을 겸비한 조선시대의 이상적(理想的)인 관료상으로, 의정부(議政府)에서 뽑은 관직자에게 주어진 호칭. 총 217명이 배출되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