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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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황사 석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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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분황사 석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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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芬皇寺 石井 |
주소 | 경북 경주시 구황동 314-5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8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주거시설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분황사 석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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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호국용변어정(護國龍變魚井)이라 불리는 신라시대 우물이다. 우물 틀의 내부는 원형, 외부는 팔각인데, 이는 불교의 원융*과 팔정도*를 상징한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이 우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분황사 우물과 금학산(琴鶴山) 기슭 동천사(東泉寺)의 동지와 청지라는 우물에 신라를 지키는 세 마리의 호국룡이 살았다. 원성왕 11년(795) 당나라 사신이 주술을 써서 이 용들을 물고기로 둔갑시켜 잡아갔다. 이 호국룡의 부인이라는 두 여인이 왕 앞에 나타나 남편을 찾아줄 것을 청하였다. 왕은 사람을 시켜 물고기를 다시 빼앗아 각각의 우물에 놓아주자, 물이 한 길이나 솟아 오르고 용들이 기뻐하며 뛰었고, 당나라 사람들은 왕의 밝은 지혜에 감복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분황사에 있던 모든 돌부처의 목을 잘라 이 우물에 넣었다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돌우물 가운데 가장 크고 우수한 것이며, 지금도 사용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 원융(圓融): 모든 법의 이치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융합하여 구별이 없음을 이르는 말
- 팔정도(八正道):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끄는 올바른 여덟 가지 길.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