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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남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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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1월 3일 (일) 15:34 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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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사지
Wollamsa Temple Site
강진여행 월남사지 삼층탑과 진각국사비, 남도답사1번지 강진군, 네이버 블로그, 2020.12.22.
대표명칭 월남사지
영문명칭 Wollamsa Temple Site
한자 月南寺址
주소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0-1 (월남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남도 기념물 제125호
지정(등록)일 1988년 12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월남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월남사지는 ‘월남사’라는 절이 있던 터이다. 월출산 남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월남사지에는 보물 제298호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과 보물 제313호인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가 남아 있다. 월남사지 발굴 조사 결과, 절의 중심 건물로 예불을 드리는 금당(金堂) 건물지와 이론을 강의하는 강당(講堂) 건물지가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금당 중심에 크기가 같은 탑을 두 개 배치한 쌍탑 형식임을 유구를 통해 확인하였는데, 이런 형식은 대부분 통일 신라 후기 양식이다. 따라서 고려 시대에 만든 월남사지 쌍탑은 이례적이므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월남사지는 발굴 조사 후에 발굴지를 전체적으로 복토하였다. 건물이 있던 곳으로 추정하는 부분은 흙을 더 높게 쌓았고, 기둥이 있던 자리에는 초석과 적심석*을 놓아 건물의 형태를 알아보기 쉽게 표시해 두었다.

월남사는 조선 시대 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 1178~1234)이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월남사지에서 백제 시대 기와 조각이 나온 것으로 보아서 백제 시대에도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이곳에서 고려 시대 건물지와 기와 조각, 고려 청자 조각들이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진각 국사 혜심이 살았던 고려 중기에 절이 크게 융성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 유구(遺構): 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잔존물.
  • 적심석: 돌 따위를 쌓을 때에 안쪽에 심을 박아 쌓는 돌.

영문

Wollamsa Temple Site

영문 해설 내용

월출산 남쪽에 자리한 이곳은 월남사라는 사찰의 터이다.

월남사의 자세한 역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고려시대의 승려인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져왔다. 그러나 2010년대에 진행된 여러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의 기와 조각과 고려시대의 건물지, 기와 조각, 청자 조각들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백제시대에도 절이 있었고 고려시대에 절이 크게 융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월남사지는 절의 중심 건물로 예불을 드리던 금당터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강의하던 2개의 강당터가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금당과 강당 사이의 양옆에는 회랑터가 있다. 금당 앞에는 원래 2개의 석탑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동탑 하나만 남아 보물 제298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당 앞에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탑을 2개 배치하는 것은 주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쌍탑은 이례적인 것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금당과 강당 외에도 건물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들에는 흙을 더 높게 쌓고, 기둥이 있던 자리에 초석을 놓아 건물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게 표시해 두었다. 이밖에도 월남사지에는 보물 제313호로 지정된 진각국사비가 남아 있다.

갤러리

참고자료

  • 정정혁, 정민호, 천득염, 「월남사 가람배치에 관한 고찰」, 『백제연구』 68권0호,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2018년 8월, 93-120쪽.

주석

  1. 정정혁, 정민호, 천득염, 「월남사 가람배치에 관한 고찰」, 『백제연구』 68권0호,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2018년 8월, 1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