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향교
삼가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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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삼가향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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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嘉鄕校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소오2길 18-5 (삼가면, 제실)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9호 |
지정(등록)일 | 1983년 8월 12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7동 일원 |
웹사이트 | 삼가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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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향교는 조선시대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기르기 위하여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교육기관이다. 시나 문장을 짓고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가르쳤는데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고, 중국과 조선의 성현(聖賢)에게 제사를 올렸다.
삼가 향교는 세종(世宗, 1418~1450) 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光海君, 1608~1623) 때 다시 지은 뒤,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삼가 향교는 경사진 언덕에 지어졌는데 앞쪽에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뒷쪽에 제사공간인 대성전을 두는 향교의 일반적인 배치양식을 따르고 있다. 동재·서재와 동·서무가 없는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각 기능을 적절하게 변형하여 지었다.
현재는 출입문이자 휴식공간이었던 풍화루, 명륜당,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대성전만이 남아 있다. 향교 동쪽에는 책을 보관하는 전사청, 관리사, 사당, 재실 등의 건물이 있다.
향교 진입로 입구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새마을 운동 당시 없어진 것을 찾아서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 하마비(下馬碑) :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 있으니 모든 사람이 예의를 갖추는 의미에서 말에서 내려 가라는 뜻으로 세운 비석.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삼가향교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때 처음 지어졌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2년에 다시 지었고, 1826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건물 배치가 바뀌게 되었다. 지금의 건물들은 20세기 초에 중건된 것이다.
경사지를 2단으로 나누어 조성한 향교 경내에는 현재 정문, 강당인 명륜당, 내삼문, 제향 공간인 대성전만 남아있으며, 왼편에 책을 보관하는 전사청과 관리사, 재실 등의 건물들이 별도의 영역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유교 성현에게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향을 피우는 의례를 행한다.
- 1826년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건물 배치가 바뀌게 되었으며 -> 경상남도의 향교 건축 내용 참고해 작성
참고 자료
- 경상남도의 향교 건축 下,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pp.214-231 -> 1826년에 흥학당을 바깥 영역으로 옮기면서 정비하였다. 이때 대성전을 함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풍화루를 중수하였고, 소설위로 향교를 정비하면서 동무와 서무가 철거되었다. 흥학당은 조선 후기 이래 향교가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자 불필요한 동서재를 없애고 유림들의 재실로 세운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에 사마재, 연계소, 흥학당 세 개의 현판이 붙어있는 것은 세 개의 건물을 하나로 통합한 결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