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진주 허만선 고가

HeritageWiki
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2월 9일 (수) 17:21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진주허만선고가.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806380000 진주 허만선 고...)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진주 허만선 고가
진주 허만선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허만선 고가
한자 晋州 許萬善 古家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승산길53번길 12 (지수면)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38호
지정일 2017년 9월 2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대한제국시대
수량/면적 1동/73.8제곱미터
웹사이트 진주 허만선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허만선 고가는 효자로 소문난 허만선이 홀로 되신 어머니를 위해 1919년에 지은 집이다.

처음에는 안채, 사랑채, 중사랑채, 광채가 ‘ㅁ’자 모양으로 있었으나 한국 전쟁으로 불에 타고 지금은 안채와 중사랑채만 남아 있다. 특히, 안채는 1919년 당시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난방 아궁이 구조와 방의 배치가 안주인 3대가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방의 크기가 다르고, 대청마루, 툇마루, 누마루*, 벽장 등 다양한 한옥 구조가 모두 있어서 전통건축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다.


  • 누마루 :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마을의 효자로 이름이 났던 허만선(1887-1953)이 홀로 남은 어머니를 위해 1919년에 지은 살림집이다.

처음에는 안채와 사랑채, 중사랑채, 광채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한국 전쟁 때 사랑채와 광채가 소실되어 지금은 안채와 중사랑채만 남아 있다.

특히 이 집의 안채는 방의 크기가 모두 다르고, 난방을 위한 아궁이 구조가 독특하게 되어 있다. 또 대청마루부터 툇마루, 누마루, 벽장 등의 다양한 건축 기법을 복합적으로 적용하여 지어졌다.

여성 3대가 한 건물에 살 수 있도록 설계된 이 건물은 건축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 건축의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다.

  • 구조 확인 필요 - 블로그 사진 기준 구조 설명 예시 ; 중앙에는 대청마루를 깔았고, 향우측에는 난간을 덧댄 누마루를 달았다. 향좌측 온돌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고 왼편 끝에 자리한 부엌으로 향하는 쪽문을 냈다. 배면에도 문을 달아 수납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