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대각서원
진주 대각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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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진주 대각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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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晉州 大覺書院 |
주소 | 경남 진주시 수곡면 대각길 104-21 (사곡리)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4호 |
지정(등록)일 | 2004년 3월 18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
수량/면적 | 4동 |
웹사이트 | 진주 대각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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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대각서원은 각재(覺齋) 하항(河沆), 무송(撫松) 손천우(孫天佑), 백암(白巖) 김대명(金大鳴), 영무성(寧無成) 하응도(河應圖), 모촌(茅村) 이정(李瀞), 조계(潮溪) 유종지(柳宗智),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 등 일곱 분을 모신 곳이다.
1610년(광해군 2)에 하항을 모시기 위해 대각사를 지었다가 1718년(숙종 44) 여섯 분을 추가하여 지금은 일곱 분을 모시고 있다.
건물은 강당, 동재, 서재, 문간채가 있는데, 전체적으로 배치가 무난하며 건물마다 다른 건축 기법들이 있어서 전통 건축 연구 자료로 가치가 있다.
특히, 흙돌담은 오랜 시간 동안 원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담 축조 기법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 시대에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대각서원은 지역 유림들이 조선 중기의 학자 하항(1538-1590)을 배향하기 위해 1610년에 세운 대각사에서 시작되었다.
하항은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은 채 자신이 나고 자란 이 마을에서 성리학 공부에 전념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저명한 유학자 조식(1501-1572)이 아끼던 제자였다.
1718년에는 하항과 함께 조식에게 글을 배운 손천우, 김대명, 하응도, 이정, 유종지, 하수일 여섯 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현재 7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봄가을에 이들에게 제사를 올린다.
1826년에 중수되었다가 1869년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이후 1947년 지금의 자리에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강당, 동서재, 문간채가 있다.
- 경내 건물 중 사당이 없음(복원할 때 세우지 않았다고 함) -> 위패는 어느 건물에 모신 것인지 확인 필요함.
- 훼철 및 복원 시점에 대한 고찰 필요함 -> 1918년으로 설명하는 경우(진주문화대전 등)와 1947년으로 설명하는 경우(서원연합회 등)가 있어 확인 필요함.
참고 자료
- 대각서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13983 -> 복원 시점
- 대각서원, 서원연합회 http://www.seowonstay.com/bbs/board.php?bo_table=slist&wr_id=928&page=11 ->훼철시기 1869년으로 제시.
- 대각서원, 디지털진주문화대전 http://jinju.grandculture.net/jinju/toc/GC00403298 -> 복원 시기 1918년으로 되어 있음.
- 진주 대각서원(晉州 大覺書院), 야촌 이제훈, 다음블로그 http://blog.daum.net/009448/16143581 -> 배향인물 개별 설명
- 대각서원중수기, 더불어 함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withha75/221502179562 -> 1826년 중수기
- 진주지역 최초로 남명을 모신 대각서원, 역사와 야생화,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win690/15938375 -> 복원할 때 사당을 세우지 않아 현재 경내에는 강당, 동서재, 창고 건물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