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향교
진주향교 |
|
대표명칭 | 진주향교 |
---|---|
한자 | 晋州鄕校 |
주소 | 경남 진주시 향교로 99-3 (옥봉동)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0호 |
지정(등록)일 | 1972년 2월 12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진주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향교는 조선 시대에 학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치고 성현에게 제사를 지낸 공립 교육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에 신교육 제도가 실시되면서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는 향사(享祀) 기능만 남아 있다.
진주향교는 고려 성종 6년(987)에 향학당(鄕學堂)으로 세워져 교육기관으로만 운영되다가 조선 태조 7년(1398)에 문묘를 세우면서 온전한 향교의 모습을 갖추었다. 본래의 건물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선조 36년(1603)과 인조 22년(1644)에 건물을 새로 지었다. 그 뒤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뒤쪽은 사당, 앞쪽은 교육 공간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2005년에는 충효교육원과 유림회관을 열어 성현에게 제사하고 학생과 시민들에게 전통과 인성을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옛 향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고 지역 학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쳤다.
진주에는 987년부터 지역의 교육기관인 ‘향학당’이 있었으며, 이곳이 1398년부터 진주향교로 운영되었다. 155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으나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사라졌고, 1603년 사당 복원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의 중수가 이루어졌다.
현재 경내에는 앞에서부터 문루,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강학당인 명륜당, 내삼문, 동무와 서무, 사당인 대성전 등의 주요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급경사를 이루는 대지의 특성상 각 영역으로 향하는 계단이 긴 편이며, 명륜당이 동쪽으로 치우쳐져 있고 반대편에 전면이 개방된 형태의 부속건물인 사교당이 있다.
문루 밖에는 하마비와 향교 이건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이 있다.
- 진한 글씨 내용 쓸 것인지 고민 필요함.
- 대성전에는 유교 성현 25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봉행한다. (부산일보 기사 참고)
- 사교당은 벽 없이 전면이 개방되어 있는 정자 형태의 건물이다. - 강당처럼 쓰이는 건물인듯.
- 중,보수 이력 : 1603년 문묘 중건, 1607년 명륜당과 동서재 중건, 1811년 중수, 1907년 중수, 1962년 경내 건물 현재 위치로 이전, 1979년 동서재 중수, 1984년 명륜당 중수, 1985년 풍화루 중수, 1986년 사교당 중수 (명륜당 이전시 규모가 축소되었다고 하는데, 언제 이루어진 것인지는 확인 필요)
참고 자료
- 진주향교, 디지털진주문화대전 http://jinju.grandculture.net/jinju/search/GC00402232?keyword=%EC%A7%84%EC%A3%BC%ED%96%A5%EA%B5%90&page=1 -> 기본 정보
- 진주향교, 진주 관광 https://www.jinju.go.kr/02232/02830/02248.web?amode=view&idx=468 -> 문묘 건립 이전 고려시대 때의 연혁 ; 고려 현종 2년(1011)에 중수 및 서재(書齋)를 중건하고 수학원(修學院), 학사(學舍), 서재(書齋), 사교학당(四敎學堂) 등으로 개칭되었으며, 조선 태조(朝鮮 太祖) 7년(1398)에 문묘(文廟)를 창건하고 향교로서 면모를 갖추었으며, 훈도(訓導), 교관(敎官), 교수(敎授) 등이 성균관(成均館)으로부터 파견되었다.
- 진주향교 추기석전 봉행, 부산일보, 2020.9.28.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0092815002887957 -> 석전대제
- 진주향교, 꿈꾸는 지니맘,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happyssm79/221984515734 -> 향교 사진 및 중보수 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