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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어류 목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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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어류 목판
주자어류 목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주자어류 목판
한자 朱子語類 木板
주소 경남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산221(광명각)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1호
지정(등록)일 1979년 12월 29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목판각류/판목류
수량/면적 2,076매
웹사이트 주자어류 목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주자어류』는 송(宋)나라 여정덕(黎靖德)이 주자와 주자의 문인(門人)들 간의 문답(問答)을 모아 편집한 50책(冊) 분량의 책이다.

「주자어류 목판」은 『주자어류』 책을 만들기 위해 나무에 새긴 목판으로 현재 2,069매가 보관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주자어류』는 1575년(선조8)에 처음 책으로 만들어졌고,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인조 시절에 만들었으나 다시 불타 없어졌다. 1770년(영조46) 영남에서 3번째로 만들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되어 1904년에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하재곤(河載昆), 하세진(河世鎭), 이도술(李道述), 허균(許均) 등 영남의 선비 68명이 힘을 모아 산청에 있는 대원사(大源寺)에서 판각(板刻)*하였다. 처음에는 덕천(德川)에 판각(板閣)을 지어 보관하다가 지금은 이곳에 판각(板閣)*을 지어 광명각(光明閣)이라 이름하고 목판을 보관하고 있다.


  • 판각(板刻): 나뭇조각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것.
  • 판각(板閣): 목판을 보관하기 위하여 만든 집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목판은 『주자어류』의 간행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주자어류』는 중국 송나라의 학자 여정덕이 유교의 성현 중 한 사람인 주자와 그 문인들이 나눈 문답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총 50책 분량으로, 성리학을 공부했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필독서였다.

이 책은 조선에서는 1575년 처음으로 간행되었는데, 이것은 임진왜란때 모두 불에 타 버렸다. 이후 두 차례 더 간행되었지만 역시 훼손되어 사라졌다.

1904년부터 1905년에 걸쳐 경상도 지역의 선비들이 힘을 모아 산청 대원사에서 2096판의 목판을 새겼고, 네 번째 『주자어류』를 간행하였다.

1906년 산청 단성면 일대에 책판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짓고 이곳에 보관하다가, 1913년 현재 자리에 새롭게 건물을 짓고 목판을 옮겨왔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일부가 소실되어 현재 총 2,069판의 목판이 전해지고 있다.


  • 기울임꼴 내용 생략해도 괜찮을듯
  • 김소희의 2020년 논문 주로 참고해 작성.
  1. 판각 참여 -> 진주 포함 ‘경남 지역’ 사림들 / 재정 지원 -> 하재곤 하세진 부자(진양 하씨-지역 부호) 포함 68명(‘합금록’ 명단 있음)
  2. 대원사는 남명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성지’같은 곳이었음. 판각을 주도한 곽종석은 남명학 계승자였고, 주로 참여한 하이태(하재곤 아버지) 등은 곽종석의 제자였음.
  3. 1906년 겨울 산청 단성면(과거 덕천 지역으로 보임)에 광명각을 지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수 없음. 이곳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 지자 곽종석과 진양하씨 가문이 노력해 19113년 지금의 자리에 장판각을 새로 지어 목판을 옮겨왔다고 함.
  • 문화재 지정 목판 수 2072판, 현재 목판 수 기존 원고 2,069매/ 논문 주석 내 2110판으로 집계한 것도 있음.


참고 자료

  • 대한제국기 진주지역 『주자어류(朱子語類)』의 간행에 관한 연구, (김소희, 고문서연구 56, 2020, pp.151-1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