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김생사지
충주 김생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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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충주 김생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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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忠州 金生寺址 |
주소 | 충북 충주시 금가면 김생로 325 (유송리)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북도 기념물 제114호 |
지정(등록)일 | 2000년 12월 2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1곽 |
웹사이트 | 충주 김생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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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김생(金生, 711 ∼ 8세기 말)은 통일신라시대의 명필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만년에 충주의 북진 언덕에서 두타행*을 닦았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나이 80이 넘도록 붓을 놓지 않아 예서(隸書), 행서(行書), 초서(草書)가 신묘한 경지이다’라고 하였다.
절터는 강변에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길쭉하게 이어져 있다. 과거 이 일대가 와당밭이라고 부를 정도로 기와가 많았다. 1999년에 지표조사를, 2002년과 2004년에 발굴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 결과 건물지와 축대 등의 유구(遺構)가 확인되었으며 ‘金生寺(김생사)’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문헌 기록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의 유물이 출토되어 김생이 이 절에 주석*하기 전부터 절이 있었으며 김생 사후에도 오랜 기간 존속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절터 내에는 1986년에 세운 김생유허집자비(金生遺墟集字碑)가 있으며 강변에 김생제방이라 불리는 축대가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물에 잠겼다. 김생사지는 탑평리사지와 더불어 충주지역에서 큰 강변에 위치한 중요한 유적이다.
- 두타행(頭陀行) : 고행을 통해 세속의 욕망을 떨쳐내는 수행방법의 하나
- 주석(駐錫) : 건물 등에 머무름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김생사의 옛터이다.
김생사는 당대 명필로 이름났던 김생((711∼791)이 만년에 수행을 했던 곳이라고 전한다.
남한강변에 위치한 김생사는 17세기까지 사격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이며, 19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조사가 이루어졌고, 1970년대에 두 차례의 지표조사가, 2002년과 2004년에 발굴조사가 실시된 바 있다.
특히 2004년에 실시한 발굴조사에서는 ‘김생사(金生寺)’라는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어 절 이름이 확인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1986년에 세운 김생유허집자비(金生遺墟集字碑)가 있다. 강변에 김생이 수해를 막기 위해 축조했다고 전하는 축대가 있었다고 하나, 이것은 충주댐 건설로 수위가 높아져 잘 확인되지 않는다.
- 충주 김생사지 발굴조사 보고서, 충청대학교 박물관, 2006.
- 충주 김생사지, 디지털충주문화대전 http://chungju.grandculture.net/Contents?local=chungju&dataType=01&contents_id=GC01901912
- 충추시 – 김생사지, 2018 한국의 사지 현황조사 보고서 上, 문화재청, 2018
-> 발굴조사 정보 및 축대 관련 이야기 (비슷한 이야기들 중복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