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임천정
의령 임천정 Imcheonjeong Hall, Uiryeong |
|
대표명칭 | 의령 임천정 |
---|---|
영문명칭 | Imcheonjeong Hall, Uiryeong |
한자 | 宜寧 臨川亭 |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정곡7길 42-6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85호 |
지정(등록)일 | 2009년 11월 19일 |
분류 | 유적건조물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의령 임천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의령 임천정은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였던 수산 이태식(1875~1951)의 서당 겸 거주공간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1928년에 그의 조카 이홍기와 지방 유학자들이 함께 지었다. 이태식은 일제강점기 당시 전국의 유림 대표 137명 중 한 명으로, 파리장서 사건*과 2차 유림단 사건**에 뜻을 같이하여 7년 동안 일제에 쫓겨 다녔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였다. 1931년에는 이곳에서 의령지역의 역사지리서인 의춘지(宜春誌)를 만들기도 하였다.
임천정은 앞면 5칸, 옆면 1칸의 ‘ㄷ’자 모양 건물이다. 가운데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두고, 각 방 앞으로 마루가 연결되어 있다. 단순하면서도 평범해 보이지만 조선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이어받은 건물이다.
- 파리장서(巴里藏書):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후 독립선언에 참여하지 못한 지역 유학자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講和會議)에 대한 독립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때 보낸 편지를 파리장서라 부름
- 2차 유림단 사건: 1925년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기 위해 일어난 독립운동 자금 마련 운동
영문
Imcheonjeong Hall, Uiryeong
This pavilion served as a living quarters and a study hall of Yi Tae-sik (1875-1951), a Confucian scholar and prominent leader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pavilion was built in 1928, by Yi’s nephew Yi Hong-gi and the local Confucian community.
In 1919, right after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took place, Confucian scholars nationwide planned to submit a petition to the Paris Peace Conference for Korea’s independence from imperial Japan's rule (1910-1945). 137 representatives from the Confucian community signed this petition, and Yi Tae-sik was one of them. In 1925, he participated in collecting money for the fund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base in Manchuria, for what he was put on the wanted list of the Japanese colonial police. In 1931, he compiled a book on the history and geography of the Uiryeong area. In 2004, he was posthumously awarded the Order of Merit for National Foundation.
The pavilion is built on a tall two-tiered platform. It features a wooden-floored hall with underfloor-heated rooms on either side. The rooms have narrow wooden verandas in front of them.
영문 해설 내용
임천정은 독립운동가이자 유학자였던 이태식(1875-1951)의 거주공간이자 강학당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1928년 그의 조카 이홍기와 지방 유학자들이 함께 지었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일어난 후 유림들은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제출하기로 하였다. 이에 전국의 유림대표 137명이 서명한 서한이 파리로 보내졌는데, 이태식은 서한에 서명한 유림대표 중 한 사람이었다. 1925년에는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기 위한 자금 마련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 때문에 일제 경찰에 수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1931년에는 이곳에서 의령 지역의 역사지리서를 편찬하였다. 2004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임천정은 2단으로 된 높은 석축 기단 위에 세워졌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방 앞에는 마루를 두었다.
참고자료
- "의령 정자여행 임천정", 의령군 공식블로그 의령이야기, 2020.01.28.
- "수산 이태식", 경남일보, 2008.07.31.[[분류:]]
[[분류:]]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