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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옥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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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옥동서원
Okdongseowon Confucian Academy, Sangju
상주 옥동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상주 옥동서원
영문명칭 Okdongseowon Confucian Academy, Sangju
한자 尙州 玉洞書院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리 546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532호
지정(등록)일 2015년 11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4,545㎡
웹사이트 상주 옥동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옥동서원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 명재상이었던 황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조선 중종 13년(1518) 황희의 영정을 모시고 공부하던 것을 시작으로 숙종 40년(1714)에 서원으로 승격되어 전식을 모시기 시작하였다. 정조 13년(1789)에 나라로부터 ‘옥동서원’이란 이름을 받았다.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기능이 줄어들고 지역을 다스리는 기능이 점차 강화된 17~18세기 서원 건축의 변화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건물 1층은 대문이고 2층에는 다락집인 문루와 유생들이 공부하는 강당,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일직선 위에 놓여 있다. 다른 서원처럼 유생들이 숙식하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없고, 문루의 다락집에 온돌방을 둔 점과 각종 부속 시설이 적은 점이 특징이다.

아울러 ‘황희 영정 3점’, ‘방촌선생문집’, ‘반간집’, ‘황씨세보’, ‘장계이고’, ‘만오집’ 등 총 5종 241책의 책을 찍어내는 목판을 비롯하여 각종 고문서 300여 건, 현판 11개 등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옥동서원은 조선 전기 재상 황희(1363-145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곳은 1518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1580년에 영당을 세워 황희를 배향하였으며, 1714년 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전식(1563-1642)을 추가로 배향했다. 1786년 두 명을 더 추가로 배향했고 1789년 사액을 받았다.

황희는 고려시대인 1389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을 얻었으나,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은둔하였다. 1394년 태조의 요청으로 조정에 나아가게 되었고, 이후로도 태종, 세종 대를 거쳐 1449년 은퇴하기까지 다양한 관직을 지냈다.

경내에는 문루와 강당, 사당, 전사청, 내삼문 등이 있다.

문루에 쓰인 기둥 부재에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으며, 2층에는 양 끝에 온돌방을 두어 기숙사처럼 사용했다. 사당 안에는 4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옥동서원은 황희의 영정 3점과 5종 241책의 목판, 고문서 300여 건 등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사라지지 않은 서원 중 한 곳이다.

  • 1786년 황효헌과 황뉴도 추가 배향했다.
  • 문루에 온돌방을 두어 기숙사 대신 운영했는데, 이는 강학 기능이 약화되던 17~18세기 서원의 건축 특징을 잘 보여준다.
  • 사당에 걸려있는 황희 영정은 황희의 둘째 아들인 황보신이 상주로 내려와 정착할 때 모사해 온 영정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