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향교 대성전
상주향교 대성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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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상주향교 대성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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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鄕校大成殿 |
주소 |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2길 111 (신봉동)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 |
지정(등록)일 | 1982년 2월 24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상주향교 대성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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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상주향교 대성전은 유학자 39명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향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물이다. 성종 17년(1486) 3칸으로 새로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자 광해군 2년(1610)에 다시 지었다. 순조 24년(1824)에 한 차례 수리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로는 학교 강당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건물은 앞면이 ‘ㅅ’자 모양 지붕에 5칸, 옆면이 3칸 건물로 서울 문묘 및 성균관의 대성전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경사지에 건물을 지은 관계로 앞쪽에는 다듬은 돌로 높게 기단을 쌓고 계단 2개를 좌우로 설치해 출입했다. 산을 깎은 뒤쪽은 돌로 쌓아 보강했다. 웅장한 규모에 정성을 들인 기단, 견고한 지붕의 뼈대와 짜임새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향교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대성전은 향교에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역 학생들에게 유교를 가르쳤다.
상주향교 대성전은 1486년 처음 지어졌다고 전하며,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서 없어진 것을 1617년 당시 상주 목사였던 정호선(1571-1632)이 다시 지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와 보수를 거쳤으며, 한국전쟁 직후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966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 건물의 위계를 나타냈다.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한국의 유교 성현 39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이들을 위한 제사를 올린다.
상주향교는 고려시대 때부터 세워져 지역 교육 기능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초기에 정비되었던 건물들이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사라졌으나 17세기에 다시 세워졌고, 해방 후에는 10년 넘게 학교 건물로 쓰이기도 하였다.
1960년대부터 건물들을 복원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으며, 현재 향교 경내에는 명륜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동무와 서무 등의 건물이 있다.
참고 자료
- 향교석전, 국립무형유산원, 2014 -> 상세 정보 (문안 내 년도 작성 기준) / 대성전 중수 관련 - 1631년 중수(상량문) 1824년 수리(기와)
- 겨울섬, 개인 블로그 https://younghwan12.tistory.com/4337 -> 향교 연혁 관련
- 워크뷰의 맛있는 도보여행, 개인 블로그 https://www.walkview.co.kr/4321 -> 1949년 상주고등공민학교를 건립하면서 대성전을 교실로 사용하였으며, 1951년에는 남산중학교를 설립하면서 향교의 동 서무를 개조하여 교실로 대성전은 강당으로 사용하였습니다. / 1966년에 대성전을 중수하고 1981년 담장을 쌓았습니다. 현재 이곳에는 '향안'과 '향약절목'등의 사료를 보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