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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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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9월 6일 (일) 02:18 판 (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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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향교
부평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부평향교
한자 富平鄕校
주소 인천광역시 계양구 향교로 19 (계산동, 부평향교)
지정(등록) 종목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
지정(등록)일 1990년 11월 9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동 / 9,596㎡
웹사이트 부평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부평향교

고려시대에 부평지역의 교육을 담당하였던 관립학교 건물 6동으로, 향교가 처음 설피된 것은 고려 인종 5년(1127)이다.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으로 건물이 소실되자 난 후에 재건하였다. 애초 부평향교에는 일반적인 향교 건물 배치인 대성전, 동무, 서무, 동재, 서재 이외에 전사청, 공수고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1921년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한 것을 필두로 여러 차례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한국향교의 전형적인 전당후묘(前堂後廟)의 방식을 취하여 명륜당, 재실(齋室) 등 교육시설을 앞에 놓고 그 뒤에 대성전(大成殿)과 동·서문의 문묘(文廟) 시설을 배치하였다.

대성전과 동·서 양무, 동·서 양재는 맞배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고, 명륜당은 팔작지붕 형식으로 건축구조가 이루어졌다.

부평향교-명륜당

조선시대 관학 교육을 위한 건물로 대성전의 앞편에 자리하고 있고 가운데 중당과 양옆에 있는 익실로 구분하는데, 중당은 옆면에서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고 익실은 팔작지붕을 중당보다 조금 낮게 구성되어 위계(位階)를 나타내주고 있다.

지붕과 처마의 높낮이와 전체적인 건물의 균형이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명륜당 앞에 마주하여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동재, 서재는 기숙사 공간이다.

부평향교-동재·서재

명륜당 동·서로 있는 장방향의 건물로서 향교의 실질적인 핵심 역할을 했던 유생들의 기숙사다. 한옥건물의 작은방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당시 유생들의 생활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당시에도 엄격한 규율이 있어 소정의 점수를 획득하여야만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으며, 유생들이 출석을 잘 하지 않았는지 식사 횟수를 출석점수로 계산하였다고 한다.

부평향교-대성전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해 안자·증자·자사·맹자 등 4대 성인과 송조 2현, 그리고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셔 왔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맞배지붕 형식이다. 건물의 두 옆면과 뒷면 벽 아랫부분에 돌아가며 낮게 벽담을 쌓았는데, 이는 전통문묘에 대한 건축기법을 느끼게 한다. 대성전 앞에 마주해 있는 동무와 서무는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셨던 곳이다.

부평향교-동무·서무

현인들의 위패를 나누어 모셨던 곳이다. 대성전의 좌·우측에 있으며, 동무는 서향, 서무는 동향이다. 각각 2간(間)으로서 맞배지붕 형식이다.

동·서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賢)을 동서로 봉안하였다. 1949년 전국 유림대회(儒林大會)의 결정으로 당시 성균관과 각 향교의 동·서무에 봉안되어 있던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는 대성전에 종향하고, 현재 동·서무는 비어 있다.


수정 국문

부평향교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부평향교는 1127년에 세워졌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소실된 건물을 1688년에 현재 위치에 재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현재 경내에는 앞에서부터 정문, 강당인 명륜당, 기숙사인 동서재, 내삼문, 동서무, 사당인 대성전이 있다. 이외에도 정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에 교직사가 있고, 정문 앞에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다.

부평향교의 건물들은 한국향교의 전형적인 배치를 따라 전학후묘(前學後廟)의 공간 구성을 이루고 있으며, 지붕의 모양을 다르게 처리하거나 단을 구분하여 건물 간, 혹은 한 건물 내 공간의 위계질서를 나타냈다.

  • 현재의 건물들은 대부분 1980년대에 새로 지은 것이다.

부평향교-명륜당

명륜당은 향교에서 강의가 이루어지던 곳이다. “명륜”이라는 이름은 『맹자』의 “교육은 모두 인륜(人倫)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는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부평향교 명륜당은 한 건물 안에서도 공간의 위계를 나타내기 위해 중앙의 당과 양옆에 달린 방의 지붕을 다르게 처리하였다.

부평향교는 1127년에 세워졌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소실된 건물을 1688년에 현재 위치에 재건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 지금의 명륜당 건물은 1981년에 새로 세워진 것이다.

부평향교-동재·서재

동재와 서재는 향교에서 공부했던 유생들을 위한 기숙사 건물로, 강학 공간인 명륜당 가까이에 자리한다.

부평향교의 동재․서재는 명륜당과 내삼문 사이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대칭을 이루며 서 있다.

부평향교는 1127년에 세워졌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소실된 여러 건물을 1688년 지금의 자리에 재건한 바 있다.

현재 건물은 동재는 1981년, 서재는 1987년에 각각 복원하여 새로 지은 것이다.

  • 동재에는 부엌이 시설되어 있고, 서재에는 좌우 측면에 굴뚝을 설치하였다.

부평향교-대성전

대성전은 향교에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부평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성현 25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성현들을 기리는 제사를 올린다.

부평향교는 1127년에 세워졌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소실된 건물을 1688년에 현재 위치에 재건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 현재의 건물은 1980년에 수리가 이루어졌다.

부평향교-동무·서무

동무와 서무는 향교에서 우리나라 유교 성인들의 위패를 모셨던 건물이다.

부평향교의 동무·서무에도 최치원을 비롯한 우리나라 성현 18명의 위패가 나누어 봉안되어 있었다.

이곳의 위패들을 1949년 대성전으로 옮겨졌고, 이후로는 특별한 기능을 하지 않고 있다.

  • 현재의 건물은 1981년에 새로 지어진 것이다.

참고 자료

○ 서울·경기도의 향교건축, 국립문화재연구소, 2000. → 향교 연혁 및 건물 중건 시점 등 확인 / 여기에서는 1921년에 명륜당 중수 이력 대신 서무를 신축했다고 되어 있음. / 경사지에 ‘3단’으로 나누어 구성 -> 위계질서 위한 단 구분 언급.

○ 부평향교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학교의 역할과 의미, 인천광역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시민기자단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iurcblog/221987550986 → 안내판 사진 재확인 (기존 제공 안내판 사진은 상태가 안 좋아 글자 판독 어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