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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 일신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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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8월 7일 (금) 21:0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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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일신여학교
부산진일신여학교.png
대표명칭 부산진일신여학교
한자 釜山鎭日新女學校
주소 부산광역시 동구 정공단로17번길 17 (좌천동)
지정(등록) 종목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
지정(등록)일 2003년 5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근대교육문화/학교시설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1동 2층/208.32㎡
웹사이트 부산진 일신여학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부산진일신여학교는 고종 32년(1895년) 10월 15일 호주 장로교선교회 여자전도부가 설립한 부산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이다. 학교 이름인 ‘일신(日新)’은 ‘날마다 새롭게’라는 뜻이다.

이 건물은 1905년 돌과 붉은 벽돌을 이용하여 매우 정교하게 쌓아 올린 서양식 건물로 1931년 2층으로 증축하였다. 개교 당시에는 좌천동에 초가 건물을 지어 3년 과정의 소학교로 출발하였으며 고종 42년(1905년) 4월 15일 지금 위치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하였다. 순종 3년(1909년)에는 사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3년 과정의 고등과를 설치하였다. 이후 고등과는 1925년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하여 동래 일신여학교로 개명하였으며 1951년에는 지금의 동래여자중학교와 동래여자고등학교로 분리, 개교하였다. 학교가 복천동으로 옮겨간 후 이 건물은 한때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역자 연수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건물의 정면 계단과 2층 난간 등은 20세기 초 서양식 건물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이전 서양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이라는 점에서 건축사적인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부산 최초의 근대 여성 교육기관이자 1919년 3·1운동 당시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부산 최초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던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산광역시에서는 2003년 이 건물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하고 2005년과 2006년에 건물을 보수·정비하여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자 하였다. 2009년에는 일신여학교의 옛날 교실을 재현하고 다양한 유물을 전시하는 등 기념전시관으로 조성하여 역사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부산진일신여학교는 1895년 호주장로교선교회 여자전도부가 설립한 부산 최초의 근대적 여성교육기관이다.

‘일신(日新)’은 ‘날마다 새롭게’라는 뜻이다. 개교 당시에는 좌천동의 초가 건물에서 3년 과정의 소학교로 출발하였고, 1905년 현재 위치에 학교 건물을 지어 이전하였다. 1909년에는 사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3년 과정의 고등과를 병설하였다. 이 고등과는 1925년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하여 동래일신여학교가 되었으며, 1951년 지금의 동래여자중학교와 동래여자고등학교로 분리 설립되었다.

학교가 다른 곳으로 이전한 후, 이 건물은 한때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역자 연수원으로 사용되었다. 2003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고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전면 보수되었으며, 2010년 역사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원래 1층 건물로 지어졌으나, 1931년 2층으로 증축되었다. 돌과 붉은 벽돌을 매우 정교하게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들었으며, 1층은 주로 돌을 사용하고 2층은 벽돌을 사용했다. 부산 지역에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은 건물인데 반해,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1919년 3.1운동 당시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부산 최초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