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부산진 일신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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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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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에 있었던 사립일신여학교는 호주장로교선교회 여자전도부가 1895년 10월 15일 좌천동에 있던 한칸의 초가에서 3년 과정의 소학교를 설치한 것이 시초로, 초대교장은 선교사인 Menzies(1895~1902)였으며, 1905년 4월 15일에 현재의 교사(校舍)를 준공하여 이전하였다.

본 건물은 호주장로교선교회에 의해 건립되어 교육시설로 사용되었고, 1919년 3.1운동과 관련하여 부산지역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을 주도한 것도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이었다. 1925년 6월 10일 동래구 복천동에 신축 교사를 지어 이전하여 동래일신여학교라 불리게 되었으니, 좌천동의 부산진일신여학교 고등과는 오늘의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 된다.

본 건물 정면의 계단과 계단 2층의 난간은 20세기 초의 서양식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전반적으로 벽돌쌓기와 돌쌓기의 세부기법이 매우 뛰어나 공이 많이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1905년에 건축된 서양식 건물은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것일 뿐 아니라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며, 이 건물의 건축 및 교육시설 운영 주체와 그동안 교육시설로서 맡아온 역할 등을 고려할 때 교회사적·교육사적 가치는 더욱 크다고 하겠다.

근대 여성교육과 부산지역 3.1운동의 발원지로서 민족의식 강화의 역할 등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하기 위해서 2006년에 건물을 보수·정비하였으며, 2009년에는 내부에 기념전시관을 설치하여 당시 교실을 재현하고 다양한 유물전시를 통해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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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일신여학교 건물은 1905년에 호주선교사들에 의해 건립된 양관으로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고, 비례와 균제미가 돋보이는 훌륭한 근대건축물로서, 부산··경남지역 최초의 신여성 교육기관이고, 3.1독립운동의 깃발을 처음으로 올렸던 독립운동의 산실로서 역사적·교육사적으로 매우 가치있는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으며, 우리 동구에서는 2004년도에 국시비 6억원을 지원받아 지붕, 교실, 벽체, 담장석축 보수 등의 보수정비사업을 추진하여 2006년 6월 23일에 준공함으로써, 우리 고장 근대문화유산 보존 전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부산진일신여학교는 1895년 호주장로교선교회 여자전도부에 의해 설립된 부산 최초의 근대적 여성교육기관이다.

‘일신(日新)’은 ‘날마다 새롭게’라는 뜻이다. 개교 당시에는 좌천동의 초가 건물에서 3년 과정의 소학교로 출발하였고, 1905년 현재 위치에 학교 건물을 지어 이전하였다. 1909년에는 사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3년 과정의 고등과를 병설하였다. 이 고등과는 1925년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하여 동래일신여학교가 되었으며, 1951년 지금의 동래여자중학교와 동래여자고등학교로 분리 설립되었다.

학교가 다른 곳으로 이전한 후, 이 건물은 한때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역자 연수원으로 사용되었다. 2003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고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전면 보수되었으며, 2010년 역사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원래 1층 건물로 지어졌으나, 1931년 2층으로 증축되었다. 돌과 붉은 벽돌을 매우 정교하게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들었으며, 1층은 주로 돌을 사용하고 2층은 벽돌을 사용했다. 부산 지역에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은 건물인데 반해,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1919년 3.1운동 당시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부산 최초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용어의 사용이 적절함
    • 본 문화재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장소성에 의미가 있으며, 수정 문안에 기재된 건축 연혁에 비해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술이 추가될 필요가 있음 (참고. 한국기독교회사 http://photohs.co.kr)
    • 후반부 건축사적 가치에 대한 기술 중 “근대건축물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은 건물인데 반해,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점에서..” 종교관련시설이 선교사에 지어졌다는 점이 건축적 가치로 강조될 필요가 없을 것으로 사료되며, 일제강점기 건축이 일본인들에 의해서 지어진 것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음.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수정사항 없음.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여자전도부에 의해 설립된~“->”여자전도부가 설립한’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듯
    •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전면 보수되었으며’ 이 부분은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될 정보입니다.

2차 수정

부산진일신여학교는 1895년 호주장로교선교회 여자전도부가 설립한 부산 최초의 근대적 여성교육기관이다.

‘일신(日新)’은 ‘날마다 새롭게’라는 뜻이다. 개교 당시에는 좌천동의 초가 건물에서 3년 과정의 소학교로 출발하였고, 1905년 현재 위치에 학교 건물을 지어 이전하였다. 1909년에는 사립학교로 인가를 받아 3년 과정의 고등과를 병설하였다. 이 고등과는 1925년 동래구 복천동으로 이전하여 동래일신여학교가 되었으며, 1951년 지금의 동래여자중학교와 동래여자고등학교로 분리 설립되었다.

학교가 다른 곳으로 이전한 후, 이 건물은 한때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역자 연수원으로 사용되었다. 2003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고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전면 보수되었으며, 2010년 역사기념관으로 개관하였다.

원래 1층 건물로 지어졌으나, 1931년 2층으로 증축되었다. 돌과 붉은 벽돌을 매우 정교하게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들었으며, 1층은 주로 돌을 사용하고 2층은 벽돌을 사용했다. 부산 지역에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지은 건물인데 반해,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이전에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졌다는 점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1919년 3.1운동 당시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부산 최초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