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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곡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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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곡 정사
현곡 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현곡 정사
한자 玄谷 精舍
주소 전북 고창군 고창읍 주곡1길 68-34 (주곡리)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57호
지정(등록)일 1974년 9월 27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현곡 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정사'란 학문 연구나 정신 수양을 목적으로 세운 건축물이다. 현곡 정사는 현곡 유영선(1893-1961)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1924년에 건립하였다. 1936년에 정사 앞에 서당인 판경당을 세우고, 1956년에는 용암사를 세웠다. 용암사에는 간재와 현곡의 영정과 위패가 함께 안치되어 있다. 현곡 정사에는 입구의 솟을대문인 상덕문을 비롯하여 판경당, 용암사, 책을 보관하는 장서각 등이 있다.

현곡의 스승인 간재 전우가 현곡 정사에서 1년 정도 강학을 하였다. 간재는 조선 최후의 유학자로 추앙을 받았지만, 나라가 외적의 침략을 받는 상황에서 거병(擧兵)하지 않았고, 파리 장서*에도 참가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현곡은 ‘국치에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학문을 이루어 도(道)로써 나라를 찾는 게 중요하다.’라는 논리를 펼쳤다.


  • 파리 장서: 191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한국의 유생들이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서한이 일제에발각된 사건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현곡정사는 유영선(1893-1961, 호 현곡)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1924년에 지은 것이다. 이곳은 본래 유영선의 스승이었던 조선 말 유학자 전우(1841~1922)가 1년여 동안 머물면서 학문을 연구하던 정자가 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안에는 입구인 상덕문을 비롯하여 판경당, 용암사, 장서각 등의 건물들이 있다. 판경당은 1936년 서당으로 쓰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용암사는 지역 유림들이 1956년에 세운 사당으로, 현재 유영선과 전우의 위패가 함께 안치되어 있다. 장서각은 전라도 지역의 ‘만권당’으로 여겨질 정도로 많은 장서가 보관되어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