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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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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18일 (목) 10:4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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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리삼층석탑
수암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수암리삼층석탑
한자 水岩里三層石塔
주소 충남 서천군 문산면 수암리 26번지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9호
지정(등록)일 1984년 5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수암리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으로, 탑 전체를 하나의 돌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각 층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고,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받침대와 연꽃무늬를 두른 그릇모양을 올려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후기 이 지방을 관할하던 한 좌수(座首)가 매년 풍년을 기원하고자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탑은 탑 전체를 하나의 돌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2층으로 된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의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고,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받침대와 연꽃무늬를 두른 그릇 모양을 올려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후기 이 지방을 관할하던 한 좌수(座首)가 매년 풍년을 기원하고자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 불탑은 부처님의 유골(사리)를 모신 조형물이다.
    •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 실제 사리가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 이 탑은 탑 전체를 하나의 돌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2층으로 된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 탑은 2층으로 된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그리고 상륜부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상륜부에는 노반, 보륜, 앙화가 남아 있다. 이 탑의 부재는 모두 각각 한돌로 이루어져 있다.
    • 각 층의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고,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받침대와 연꽃무늬를 두른 그릇 모양을 올려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 각 층의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고,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이 석탑은 기단부에 문비가 새겨진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기단부의 귀꽃, 옥개석 하면의 귀포 등 장식성이 가미되어 있다. 제작시기는 고려전기로 추정되고 있다.
  2.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 부처의 유골을 봉안한 일종의 무덤(墓)이며, 실제 유골이 없어도 부처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신성시 해왔다.
    • 이 탑은 탑 전체를 하나의 돌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2층으로 된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 이 탑은 상하 2층으로 이루어진 기단부와 3층의 몸돌과 지붕돌로 이루어진 탑신부, 그리고 탑의 맨 위인 머리부분을 장식하는 상륜부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졌으며 하나의 돌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2층으로 된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층의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고,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기단에는 부처의 유골을 모신 공간이 있다는 의미로 문 모양을 새겼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 후기 이 지방을 관할하던 한 좌수(座首)가 매년 풍년을 기원하고자 이 탑을 세웠다고 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