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고택
이태형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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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이태형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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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泰衡古宅 |
주소 | 경북 안동시 향교1길 27-33 (송천동)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8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2동 |
웹사이트 | 이태형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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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고성이씨 후평파(後平派)의 종택으로 입향조인 이사악(李士岳)의 증손자인 이원보(李元輔)가 조선 숙종(肅宗) 36년(1710)에 지은 것으로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 건물은 ‘一’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정침(正寢)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튼‘口’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반,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맞배집으로 가운데에 대문이 있으며, 대문을 중심으로 좌측에 거릿방과 고방이 있고 우측에는 큰사랑과 작은사랑이 있다.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홑처마 건물이다. 좌측에 안방이 있고 정면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우측에는 상방, 고방, 모방이 이어져 있다. 가구는 3량가이다. 부엌에는 부뚜막 맞은 편에 물독이 묻혀 있이 옛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고성이씨 참판공파(叅判公派)의 종택으로 1710년(숙종 36) 입향조 이사악(李士岳, 1628-1714)의 증손자인 이원보(李元輔, 1697-1738)가 건립하였다. 집의 이름은 31대손 이태형(李泰衡)의 이름을 따서 이태형 고택이라 한다.
원래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지례리에 있었는데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9년 현재 위치인 안동시 송천동으로 이건하였다.
이 건물은 ‘一’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정침(正寢)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튼 ‘口’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부엌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침은 제사를 지내거나 일을 보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1차 수정
이 집은 고성이씨 참판공파(叅判公派)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고성이씨는 이사악(李士岳, 1628~1714)이 임동면 지례리에 정착한 이후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이 집은 이사악의 증손자 이원보(李元輔, 1697~1738)가 1710년에 건립하였고, 집의 이름은 31대손 이태형(李泰衡)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9년에 지례리에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앞쪽의 ‘ㅡ’자형 사랑채와 뒤쪽의 ‘ㄷ’자형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가운데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고, 대문 양옆에는 각각 고방과 사랑방이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오른쪽에는 건넌방과 고방이 있다.
참고자료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호 이태형고택 (李泰衡古宅),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1_1_0&ccbaCpno=3413700470000
- 이태형 고택,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ko/Contents/Index
- 고성이씨 대종회 인터넷족보. http://www.yesjokbo.biz/jokboroot/new_default.asp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는 입향조가 이후장으로 되어 있고, 기존 국문에는 이사악으로 되어 있다. 족보를 통해 확인한 결과 입향조에 대한 기록은 나와 있지 않지만, 이사악의 배우자가 의성김씨인 점과 의성김씨 문중에서 묘갈명을 찬술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사악 대에 안동지역으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사악의 아들 이후장의 배우자는 안동김씨인데 안동지역으로 이주해 온 뒤 지역 유력가문과 혼인한 것으로 보인다. 증손자인 이원보도 마찬가지로 안동김씨 집안과 혼인하였다.
기존 국문에 고성이씨 후평파라고 되어 있는데 고성이씨 파 가운데 후평파는 없고, 이사악, 이후장, 이원보, 이태형 모두 참판공파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