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태형 고택
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이 건물은 고성이씨 후평파(後平派)의 종택으로 입향조인 이사악(李士岳)의 증손자인 이원보(李元輔)가 조선 숙종(肅宗) 36년(1710)에 지은 것으로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9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 건물은 ‘一’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정침(正寢)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튼‘口’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반,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맞배집으로 가운데에 대문이 있으며, 대문을 중심으로 좌측에 거릿방과 고방이 있고 우측에는 큰사랑과 작은사랑이 있다.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홑처마 건물이다. 좌측에 안방이 있고 정면에는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우측에는 상방, 고방, 모방이 이어져 있다. 가구는 3량가이다. 부엌에는 부뚜막 맞은 편에 물독이 묻혀 있이 옛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고성이씨 참판공파(叅判公派)의 종택으로 1710년(숙종 36) 입향조 이사악(李士岳, 1628-1714)의 증손자인 이원보(李元輔, 1697-1738)가 건립하였다. 집의 이름은 31대손 이태형(李泰衡)의 이름을 따서 이태형 고택이라 한다.
원래 경상북도 안동군 임동면 지례리에 있었는데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9년 현재 위치인 안동시 송천동으로 이건하였다.
이 건물은 ‘一’자형의 사랑채와 ‘ㄷ’자형의 정침(正寢)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튼 ‘口’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는 부엌과 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침은 제사를 지내거나 일을 보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1차 수정
이 집은 고성이씨 참판공파(叅判公派)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고성이씨는 이사악(李士岳, 1628~1714)이 임동면 지례리에 정착한 이후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이 집은 이사악의 증손자 이원보(李元輔, 1697~1738)가 1710년에 건립하였고, 집의 이름은 31대손 이태형(李泰衡)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9년에 지례리에서 현재 위치로 옮겼다.
앞쪽의 ‘ㅡ’자형 사랑채와 뒤쪽의 ‘ㄷ’자형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가운데에는 안채로 들어가는 대문이 있고, 대문 양옆에는 각각 고방과 사랑방이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안방과 부엌이, 오른쪽에는 건넌방과 고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