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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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에 해당하며 문 상부에 다락을 올려 누문(樓門) 형식을 취했다. 경룡관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직접 지은 것이며 왕이 뜻을 풀이하여 이르기를, 등영주(登瀛州)의 학사들이 임금의 시에 화답한 것을 본 뜬 것이라고 했다. 등영주란 신선이 사는 산인 영주에 오른다는 말이며, 선비가 왕의 총애를 받아 영광을 입는 것을 지칭한다. 경룡(景龍)은 당나라 때 태종이 열여덟 명 학사들을 칭송한 옛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장락당은 국왕이 화성에 내려오면 침전처럼 이용하는 곳이고 그 남쪽 유여택은 왕이 업무를 보는 편전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데, 경룡관은 장락당의 출입문이면서 상층 누각은 왕이 신하들과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건물은 장초석을 높게 세우고 그 위에 기둥을 올려 누각을 꾸몄으며 하층은 3칸 모두 판문으로 문짝을 대서 격식을 높였다. 문 이름은 즐거움에 이른다는 뜻으로 지락문(至樂門)이라 했다.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린다는 장락당의 출입문에 걸맞은 이름을 취했다. 상층 누각은 사면에 머름을 대고 그 위에 분합문을 달았는데 문들은 모두 들어 열 수 있도록 했다. 경룡관 북쪽 행각은 봉수당 남쪽과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봉수당 마당에서 장락당이 차단될 수 있도록 했다.
- 연혁 - 1794년(정조18) 건립 / 2002년 복원
- 구조 - 겹처마 익공식 맞배지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장락당으로 들어가는 누문(樓門) 형태의 출입문이다. 장락당은 왕이 머무는 곳이므로, 아래층은 돌기둥을 세우고 두꺼운 판자 문을 달아서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다. 상층은 휴식을 취하거나 작은 인원이 모여서 연회를 열 수 있는 장소로 마련되었다. 상층의 창문들은 모두 들어서 열 수 있게 해서 필요할 때는 실내를 개방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은 궁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