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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흥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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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9일 (화) 13:1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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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흥교당
영덕 흥교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덕 흥교당
한자 盈德 興敎堂
주소 경상북도 영덕군 도곡길 41-21 (축산면)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7호
지정(등록)일 2014년 12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주거시설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棟⁄48㎡
웹사이트 영덕 흥교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흥교당은 1688년(숙종 14) 건립된 건물이다. 1868년(고종 5) 박선(朴璿, 1596년~1669년, 호: 도와)과 권경(權璟, 1604~1666, 호: 대은)을 배향했던 도계정사(陶溪精祠)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자 그 신위를 모신 건물이다.

박선은 박의장(朴毅長, 1555-1615)의 넷째 아들이며 장현광의 제자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관직 생활은 거의 하지 않고 고향에서 후진을 양성하는데 힘썼다. 권경은 안동권씨 가운데 영덕에 처음 들어온 시조인 권책(權策)의 6세손이다. 평소 고매한 기상을 지닌 선비로 알려졌다.

흥교당은 흙으로 담장을 둘렀고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1차 수정

흥교당은 1688년 건립된 건물이다. 박선(朴璿, 1596년~1669년)과 권경(權璟, 1604~1666)을 배향했던 도계정사(陶溪精祠)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자, 이곳에 그 신위를 모시기 시작하였다.

박선은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관직 생활은 거의 하지 않고 고향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권경은 안동권씨 가운데 영덕에 처음 들어온 시조인 권책(權策)의 6세손이다. 평소 고매한 기상을 지닌 선비로 알려졌다.

흥교당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흙으로 두른 담장이 2004년 태풍으로 붕괴되어 보수하였다.

자문의견

2차 수정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