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시암고택
영덕 시암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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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덕 시암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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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盈德 時庵古宅 |
주소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창수영해로 305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76호 |
지정(등록)일 | 2010년 6월 1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2동 |
웹사이트 | 영덕 시암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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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남진만(1697~1773)이 생활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후 후손 남교성(南敎成)이 친척인 남고(南皐,1807~1879, 호: 時庵)에게 매각하였다. 남고의 후손이 현재까지 관리하고 있다.
남고는 19세기 영남학파의 큰 스승인 류치명의 문인이자 의병장 남경훈의 후손이다. 평소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을 쏟았다. 혼인과 함께 독립을 위해 이 집을 구매하였다.
시암고택은 18세기 무렵 건립되어 19세기에 중수되었으나 크고 작은 보수로 인해 변화되어 건축적 가치는 다소 미흡하다. 1959년 태풍 사라로 인해 침수 피해를 당해 크게 보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 지역적 특색을 보여주는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1차 수정
이 건물은 남진만(1697~1773)이 생활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이후 후손 남교성(南敎成)이 친척인 시암 남고(時庵 南皐, 1807~1879)에게 매각하였으며, 남고의 후손이 현재까지 관리하고 있다.
남고는 19세기 영남학파의 큰 스승인 류치명(柳致明, 1777~1861)의 제자이자 의병장 남경훈(南慶薰, 1572~1612)의 후손이다. 평소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힘을 쏟았으며, 혼인하면서 이 집을 구매하였다.
시암고택은 18세기 무렵 건립되어 19세기에 중수되었으나, 이후 크고 작은 보수로 인해 원형이 많이 변화되었다. 1959년 태풍 사라로 피해를 입어, 크게 보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19세기 지역적 특색을 보여주는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자문의견
2차 수정
참고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영덕 시암고택.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31,05760000,37&pageNo=1_1_1_0
- 네이버블로그, 여행은 행복이다, 시암고택. https://blog.naver.com/ohmark/221000870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