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첨성대
경주 첨성대 Cheomseongdae Observatory,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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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첨성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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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Cheomseongdae Observatory, Gyeongju |
한자 | 慶州 瞻星臺 |
주소 |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국보 제31호 |
지정(등록)일 | 1962년 12월 20일 |
분류 | 유물/과학기술/천문지리기구/천문 |
시대 | 신라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경주 첨성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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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동양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다. 『삼국유사』의 ‘지기삼사(知幾三事)*'를 참고하면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632~647) 재위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사회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살피는 천문관측은 국가의 길흉을 반영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큰 관심사였다.
첨성대는 받침부 위에 다듬은 돌로 아래쪽이 부른 술통 모양의 몸통을 27단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긴 돌을 맞물려 우물정자(井) 모양을 얹었다. 안쪽은 12단까지 자갈과 흙으로 채우고 위로는 트였는데, 13단과 15단 사이에 정남향으로 창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람이 가운데로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사가 있어 첨성대의 기능을 알 수 있다.
멀리서 보면 정(井)자형의 우물이 하늘을 향해 솟은 모습이어서 의례 상징물 혹은 기념비적 건축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지기삼사(知幾三事): 삼국유사에는 선덕여왕이 즉위 당시 예측한 세 가지 신비로운 일이 기록되어 있다. 첫째, 당나라 태종이 선물로 보낸 모란꽃 족자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모란에 향기가 없음을 알아낸 것. 둘째, 영묘사의 연못에서 겨울에 많은 개구리가 운다는 얘기를 듣고 여근곡(女根谷)에 백제군이 매복했음을 알아 낸 것. 셋째,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예측한 것이다. 이 기록 말미에 첨성대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동양에서 만들어진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 632~647) 재위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깥쪽은 받침대 역할을 하는 사각형의 기단 위에 술병 모양의 몸통을 27단으로 쌓아 올리고, 맨 위에 긴 돌을 이용해 우물정자(井) 모양을 얹은 형태이다.
안쪽은 12단까지 자갈과 흙을 이용해 채웠고, 13단과 15단 사이에 정남향?(남동쪽?) 으로 창이 나 있다. / 남동/정남’쪽으로 난 창문을 기준으로 아래쪽은 자갈 등으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비어 있다. 외벽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지만, 내부문 돌의 뒷부리가 튀어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사람이 가운데로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조선시대의 기록 등을 볼 때 첨성대는 천문 현상을 관찰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멀리서 보면 정(井)자형의 우물이 하늘을 향해 솟은 모습이어서 의례 상징물 혹은 기념비적 건축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기울임꼴 글씨 내용 고민
-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