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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능지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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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능지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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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능지탑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능지탑지
영문명칭 0
한자 慶州陵只塔址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621-1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34호
지정(등록)일 1982년 8월 4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역사사건/역사사건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경주 능지탑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능지탑은 예로부터 능시탑(陵屍塔) 또는 연화탑(蓮華塔)으로 불려왔다. 신라삼산조사단(新羅三山調査團)이 1969년부터 수차례 조사한 후, 197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원래는 기단 사방에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세우고 연화문 석재로 탑신을 구성한 5층탑으로 추정된다. 발굴 중에 소조불상*의 파편과 많은 양의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어 탑 사방에 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부는 다듬은 돌로 석단을 쌓고 윗면은 흙을 덮고 잔디를 심었다. 둘레에는 12지신상 9구를 방위에 맞게 안기둥처럼 세웠는데, 12지신상 중의 8구는 낭산 동쪽 황복사지(皇福寺址) 앞에 있는 미완성 왕릉터에서 옮겨온 것임이 확인되었다. 탑신부는 기단부와 같은 형식인데 위쪽에 굄돌을 한 단 더 올리고 지붕을 사모지붕처럼 흙을 쌓아 마감하였다.

현재 탑 주변에는 정비하면서 사용하고 남은 연화석 36개가 쌓여 있고, 그 옆에 성격이 밝혀지지 않은 토단 유구가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은 임종 후 10일 내에 왕궁 밖 뜰에서 검소하게 화장하라고 유언하였는데, 탑에서 가까운 곳인 사천왕사지에서 문무왕릉비 조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하기도 한다.


  • 소조불상(塑造佛像): 흙을 빚어 만든 불상
  • 감실(龕室): 불상이나 신주, 성체 등을 모시기 위해 벽을 깊이 파서 만든 공간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과거 능지탑 혹은 연화탑이라 불린 탑의 자리로 추정되는 유적이다.

본래 기단 사방에 십이지신상을 새기고 연꽃으로 장식한 석재로 탑신을 구성한 5층 이상의 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69년부터의 조사를 거쳐 1979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돌을 다듬어 단을 만든 후 흙을 덮고 잔디를 심어 기단부를 조성하면서 십이지신상 9구를 방위에 맞게 안기둥처럼 세웠다. 기단부 위에는 받침돌을 한 단 더 올린 후 흙을 쌓아 위를 마감하였다.

발굴 중 소조불상의 파편과 다량의 기와 조각들이 출토되어 불상을 모시기 위한 감실도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탑에서 가까운 곳인 사천왕사지에서 문무왕릉비 조각이 발견되어 이곳을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의 화장터로 추정하기도 한다.

  • 기단부 면석에 사용된 십이지신상은 호랑이, 용, 뱀을 제외한 9구이다.

참고 자료

  • 신라고분 기초학술조사연구 IV-석조물자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