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고루
경주 남고루 Namgoru Embankment,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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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남고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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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Namgoru Embankment, Gyeongju |
한자 | 慶州 南古壘 |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황오동 21-1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17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시설 |
수량/면적 | 41,743㎡ |
웹사이트 | 경주 남고루,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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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남고루는 대릉원의 남쪽 입구에서부터 동쪽으로 황오동 고분군을 돌아 북쪽의 북천까지 이어진 토루(土壘)*이다. 시가지가 확대되면서 대부분 흔적 없이 파괴되었고, 경주고등학교 서쪽을 지나는 일부만이 남아 있다.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고려 현종 3년(1012) 8월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고,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현종 때 전라, 충청, 경상 3도의 군졸을 동원하여 북천에 돌을 쌓아 제방(堤防)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1993년에 남고루의 일부를 발굴조사한 결과 토루 아래층에서 통일신라시대 도로유적과 성벽의 기초 석축, 해자(垓子)* 등이 확인되어 고려시대에 쌓은 읍성의 외성일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 토루(土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으로 쌓은 제방이나 둑, 보루(堡壘)
- 해자(垓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 굴강(掘江)·외호(外濠)·성호(城濠)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남고루는 만들어진 시기나 목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유적이다. 주로 흙을 이용해 제방처럼 쌓았지만 일부구간은 돌을 이용한 곳도 있다.
과거에는 대릉원 남쪽 입구에서부터 동쪽으로 황오동 고분군을 돌아 북쪽의 북천까지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주시가 개발되면서 대부분 파괴되었고, 지금은 경주고등학교 서쪽 등 일부에만 흔적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에 기본적인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있으며, 당시 밑넓이 9.5m, 외벽높이 3.5m, 내벽높이 2m로 확인되었다.
『고려사절요』나 『동경잡기』등의 기록에 고려 현종 때인 1012년 북천에 돌을 쌓아 제방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남아있고, 현재의 위치 및 규모 등을 살펴볼 때 고려 때 읍성의 수해를 막기 위해 쌓은 제방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또 1993년 일부 구간의 발굴조사 결과 확인된 아래층의 통일신라시대 도로유적과 성벽의 기초 석축 등을 토대로 고려시대에 쌓은 읍성의 외성일 가능성도 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