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암(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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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제암(궁)지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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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천제암(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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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0 |
한자 | 天祭菴(宮)址 |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문산리 산64-2 |
지정(등록) 종목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4호 |
지정(등록)일 | 1995년 3월 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제사유적/제사터 |
수량/면적 | 1,025.2㎡ |
웹사이트 | 천제암(궁)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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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곳은 참성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제기와 제물을 준비하던 재궁(齋宮)이었다.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목은 이색(李穡)이 지은 ‘마니산 기행’이 있고, 조선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물며 하늘에 제를 지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 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천제암궁터는 삼단의 석축과 오른편에 우물이 남아있고, 조금 아래에는 이곳에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인 ‘禁標(금표)’란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여지도서」 등 옛 문헌에는 ‘천재암(天齋庵)’이나 ‘천재궁(天齋宮)’으로 표기되어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단군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제기를 보관하고 제물을 준비하던 곳이다.
3단의 축대가 있고 아래쪽에 네 개의 돌기둥이 서있으며, 축대 꼭대기에는 기왓장 조각들을 모아 놓았다. 단 오른편에는 우물이 남아있다.
이곳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고려 말 학자인 이색의 시가 남아있고, 조선 태종이 임금이 되기 전 이곳에 머물며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어 고려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조선 태종 - 이방원. 기사에 의하면 조선이 건국되기 전으로 보임.
- 연산군 6년(1500)에는 재궁의 전사청(典祀廳)을 고쳐 지을 때, 수군이 직접 양식을 가지고 다니면서 매우 힘들게 지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곳 재궁을 나라에서 관리했음을 알 수 있다.
- 천제암이 참성단까지 오르지 못하는 경우에 참성단을 대신해 제단의 기능을 했다는 설도 있음.(인천일보, 2011.7.1. 기사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24493)
- 금표 : 참성단금표. 금표 글자 왼쪽으로 갑자 팔월 입(甲子 八月 立)이라는 글자가 있다. - 참성단과 천제암 모두 ‘제사’와 관련된 곳이었기 때문에 두 곳 모두에 해당하는 ‘금표’ 아니었을지...(개인 추측. 그러나 원 문안에서는 금표가 천제암 진입을 금하기 위한 것으로 읽힐 우려가 있어 초고 작성시 우선 배제함.)
1차 수정
참고 자료
- 현스 바비큐 아카데미,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jhyun20&logNo=221814770760&categoryNo=28&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postListTopCurrentPage=1&from=search
→ 최근 글. 사진 상세함.
- 떡하니 새겨진 '금지 표시', 민초 아픔 아른거리네 - (우리 고장 문화재 답사②) 참성단금표와 천제암궁지를 찾다, 오마이뉴스, 2015.9.7.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1778 → 태종 관련 이야기 기록. ‘금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