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향교
태안향교 |
|
대표명칭 | 태안향교 |
---|---|
한자 | 泰安鄕校 |
주소 | 충청남도 태안군 백화1길 7 (태안읍)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제139호 |
지정(등록)일 | 1997년 12월 23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
수량/면적 | 1동/3,047㎡ |
웹사이트 | 태안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향교는 고려 때부터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에는 전국의 모든 고을에 세워졌다. 향교를 통해 유교를 알리고 인재를 길러야 했으므로 나라에서 향교에 땅과 노비, 책 등을 주었고, 고을의 수령(군수)이 정성껏 관리하였다. 태안향교의 건물은 공자 등 중국과 우리나라의 유학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 학문을 가르치고 배우던 명륜당, 학생들이 거주하는 동재‧서재가 있다.
태안향교가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 초기에는 ‘몇 칸의 초가집’인 어려운 형편이었다가 1413년(태종 13) 사장동(현 동문리 샘골)에 새로 건립하였다. 그 후 향교 자리에서 뱀과 호랑이가 나타나 현 태안중학교 자리로 이전하였는데 화재로 불타버리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향교의 대들보에 쓰인 상량문에는 1720년(숙종 46)에 건물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향교에서는 유교 경전과 역사를 배우고 글쓰기도 익혔다. 천민만 아니면 누구나 교육생이 될 수 있었지만, 조선 후기로 갈수록 양반 신분이 독차지했고, 태안향교의 교생 정원은 30명에서 점차 늘어 50명까지 되었다.
향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대제라는 큰 제례를 올린다. 태안향교는 제례와 함께 유림의 날 행사를 진행하여 유교의 전통을 지켜나가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태안향교는 조선 초기인 1407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몇 차례 중건과 이건을 거듭하다가, 1720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지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가 이루어졌다.
현재 경내에는 정문,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강당인 명륜당, 내삼문, 동무와 서무, 사당인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한국의 성현 39명의 위해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