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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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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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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 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산 향교
영문명칭 0
한자 靈山 鄕校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유생길 19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3호
지정(등록)일 1983년 8월 6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영산 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향교는 국가에서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기르는 지방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시나 문장을 짓는 법과 유교의 경전과 역사를 가르쳤고 중국과 조선의 성현에게 제사를 올렸다.

영산 향교가 처음 세워진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임진왜란 때 없어졌다가 다시 세워졌고, 1959년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손보고 고쳤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 기능을 담당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건물을 앞쪽에 두고, 제례* 기능을 담당하는 대성전을 뒤쪽에 배치하여 구분하였다. 한국전쟁 때 없어진 영산향교를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대성전의 위치가 옮겨져 현재는 두 공간이 분리되고, 대성전이 별개의 건물처럼 보이게 되었다.

현재는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매해 봄과 가을에 공자에게 제사를 지낸다.


  • 제례 : 제사를 지내는 의례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영산향교가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고 조선 중종(재위 1506〜544) 때 중수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4년에 중건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수한 것으로 보인다.

출입구인 풍화루, 강당인 명륜당, 동서재, 내삼문, 동서무, 사당인 대성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들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인접해있는 일반적인 향교와 달리 명륜당과 대성전은 건물이 향하는 방향이 다르며, 건물 사이가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사이에 계단식으로 일궈진 밭이 있다. 이는 한국전쟁 때 없어진 영산향교를 다시 세우기 위해 1959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하는 과정에서 대성전의 위치를 산 중턱으로 옮기면서 두 공간이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매년 봄과 가을에 공자에게 제사를 지낸다.


  • 1959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창녕군 제공 기록)
  • 국가문화유산 포털에는 ‘동서무가 없다’고 되어 있으나 사진에서 확인 가능(최근 복원했다고 함->2000년대 이후인듯)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