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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부곡리 이씨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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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부곡리 이씨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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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부곡리 이씨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창녕 부곡리 이씨고가
영문명칭 0
한자 昌寧 釜谷里 李氏古家
주소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면 굴말길 40-17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08호
지정일 1985년 1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창녕 부곡리 이씨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창녕 부곡리 이씨고가는 조선 후기 영남의 지주층* 주거양식을 보여주는 주택으로, 지어진 시기는 철종 7년(1856) 무렵으로 추정된다. 가옥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부터 취락이었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부터 벽진 이씨(碧進 李氏)가 정착하여 살았다.

약 1,031㎡ 면적의 터에 여성 공간인 안채와 남성 공간인 사랑채 건물만이 남아 있는데, 사랑채의 격식이 안채보다 높게 되어 있다. 이는 사랑채가 바깥주인이 주로 사용하는 공간이고 손님을 맞이하는 곳으로서 대외적으로 양반가의 풍모를 나타내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사랑채에 별도의 부엌 칸을 마련하여 사용한 것도 사랑채의 역할이 컸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규모가 크고 건물 자재도 중후하여 양반집의 사랑채로서 손색이 없다.


  • 지주층 : 땅을 소유한 계층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경상남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지방 세력가의 가옥으로, 1856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사랑채와 안채 건물만 남아있는데, 두 공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사랑채는 중앙의 대청 마루가 있고 오른쪽에 온돌방이 배치되어 있으며, 왼쪽에 부엌이 딸려 있다.

남성이 주로 사용하는 사랑채에 별도의 부엌이 있는 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대외적인 공간으로서의 사랑채의 역할이 컸음을 의미한다.

안채는 좌측부터 부엌과 온돌방, 마루,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마을에는 임진왜란 이후부터 벽진 이씨가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