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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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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4월 10일 (금) 15:5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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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향교
Namhae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남해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남해향교
영문명칭 Namhaehyanggyo Local Confucian School
한자 南海鄕校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망운로10번길 51 (북변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2호
지정(등록)일 1983년 8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향교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남해향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향교는 유교의 옛 성현을 받들면서 지역사회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미풍양속을 장려할 목적으로 설립된 전통시대의 지방 교육 기관이다. 남해 향교는 1450년(세종32)에 건립된 이래, 수차례 이전과 중수를 거듭하다가 1892년(고종29)에 이곳에 자리 잡았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서재는 교육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및 동·서무는 제례기능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남해향교의 건물배치는 교육공간을 앞쪽에, 제례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배치의 일반적 형태인 전학후묘양식이다. 그러나 건물의 이전 과정에서 그 짜임새가 많이 변형되었다. 입구에서 정문의 역할을 하는 누각이 없고, 동·서재의 배치도 중심축에서 너무 벌어져 있어 엉성한 느낌을 준다. 명륜당은 정면 4칸의 건물인데, 원래 홀수칸을 원칙으로 하는 5칸이었던 것이 중수 과정에서 축소된 듯 하다. 오직 화려한 대성전만이 조선 말기의 모습을 간직한 채 제례기능만 남은 오늘날의 향교의 위상을 전해주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이 향교의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진 후 1669년에 대성전(大成殿)을, 1678년에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하였다. 그 후 1892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이후 1917년에 명륜당과 나머지 건물들도 옮겼고, 1982년에는 홍살문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외삼문·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서문(西門)·관리사(管理舍)·홍살문·고자가(庫子家)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 등이 위치하고, 그 뒤로 제사 공간인 대성전 등이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조선 전기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매년 양력 5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향교에는 당시 교관, 원생, 지역 유림 등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명단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1차 수정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남해향교는 조선 초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진 후 1669년에 대성전(大成殿)을, 1678년에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하였다. 그 후 1892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이후 1917년에 명륜당과 나머지 건물들도 옮겼고, 1982년에는 홍살문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외삼문·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 관리사(管理舍)·홍살문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 등이 위치하고, 그 뒤로 제사 공간인 대성전 등이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형식이다. 매년 양력 5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향교에는 당시 교관, 원생, 지역 유림 등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명단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자문의견

  1. 사적, 매장 위원1
    • 남해향교는 조선 초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진 후 1669년에 대성전(大成殿)을, 1678년에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하였다. 그 후 1892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이후 1917년에 명륜당과 나머지 건물들도 옮겼고, 1982년에는 홍살문도 건립하였다.

→ 남해향교는 조선 초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없어진 후 1669년에 대성전(大成殿)을, 1678년에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하였다. 1892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서 양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1917년에 명륜당과 나머지 건물들도 옮겼고, 1982년에는 홍살문도 건립하였다.

  1. 사적, 매장 위원2
    • “설립된” → “설립한” / “건축형태는” → “건축 형태는” / “배치형식이다.” → “배치 형식이다.” / “제사를 지내고 있다.” → “제향(祭享)을 거행한다.” / “이 향교에는 당시 교관, 원생, 지역 유림 등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명단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이러한 자료들은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 “향교에는 2020년 4월 10일 (금) 15:58 (KST)명단이 보존되어 있다. 이는 강혜원 (토론) 2020년 4월 10일 (금) 15:58 (KST)귀중한 자료이다.”
    • 동ㆍ서 양무 → 동무(東廡)ㆍ서무(西廡)와

2차 수정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남해향교는 조선 초기에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진 후 1669년에 대성전을, 1678년에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892년에 대성전을 비롯한 동무ㆍ서무와 내삼문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1917년에 명륜당과 나머지 건물들도 옮겼고, 1982년에는 홍살문도 건립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외삼문·명륜당·동재·서재· 관리사·홍살문 등이 있다. 건축 형태는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 등이 위치하고, 그 뒤로 제사 공간인 대성전 등이 위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형식이다. 매년 양력 5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 향교에는 당시 교관, 원생, 지역 유림 등의 인적사항을 기록한 명단이 보존되어 있다. 이는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남해향교 문화유산 남해향교
대성전(大成殿) 문화유산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문화유산 명륜당(明倫堂)
내삼문 문화유산 내삼문
외삼문 문화유산 외삼문
동재 문화유산 동재
서재 문화유산 서재
홍살문 문화유산 홍살문
전학후묘 개념 전학후묘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대성전(大成殿) 남해향교 ~와 관계가 있다.
명륜당(明倫堂) 남해향교 ~와 관계가 있다.
내삼문 남해향교 ~와 관계가 있다.
외삼문 남해향교 ~와 관계가 있다.
동재 남해향교 ~와 관계가 있다.
서재 남해향교 ~와 관계가 있다.
홍살문 남해향교 ~와 관계가 있다.
남해향교 전학후묘 ~와 관계가 있다.

갤러리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