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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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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성사
Buseongsa Shrine
부성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부성사
영문명칭 Buseongsa Shrine
한자 富城祠
주소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내동길 47-17 (산성리)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
지정(등록)일 1984년 5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부성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최치원(崔致遠, 857~?)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치원은 신라 말기 6두품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학자이며, 문장가이다. 호는 고운(孤雲)이다.

사당의 이름은 그가 893년 부성군(현 서산)의 태수를 지냈던 인연으로 인해서 서산의 옛 이름으로 붙여진 것이다. 조선 선조 때 그의 덕망을 추모하던 유림들이 건립하였는데, 건립 초기에는 ‘도충사(道忠祠)’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뒤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1907년 후손에 의해 재건되었다. 1913년 유림들의 뜻을 모아 사우로 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이름도 부성사라고 불렀다.

사우(祠宇)와 내·외삼문(內·外三門), 동·서재(東·西齋)로 구성되어 있다. 내삼문은 솟을대문 형식이고,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만들었으며,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고운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수정 국문

초고

부성사는 신라 말기의 대표적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 857~?)을 기리는 사당이다. 부성은 서산의 옛 지명으로, 최치원은 893년 37살의 나이에 부성군 태수로 임명되어 이곳에 왔다. 그것을 기념하여 이름을 부성사라 하였다.

조선 선조 때(1567~1608)에 최치원의 덕망을 추모하던 이 지역의 유학자들이 후원하여 지었는데, 그때의 첫 이름은 도충사(道忠祠)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1907년 경주 최씨 문중에서 재건하면서 최치원의 후손인 고려 후기의 충신 최청(崔淸, 1344~1414)의 영정도 함께 봉안하였다. 그 후 1913년 지금의 이곳으로 옮기고 이름을 부성사라 하였다. 이때 최청의 영정과 위패는 별도로 마련된 사당으로 옮겨갔다.

현재 부성사 건물은 외삼문(外三門)을 들어서면 양 옆으로 학문을 닦는 공간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고, 다시 내삼문(內三門)을 들어서면 사당이 있는 구조이다. 외삼문은 가장 바깥의 문을 이르며, 사당으로 들어가는 문인 내삼문을 따로 설치하여 정결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당에는 부성사(富城祠) 현판이 걸려있고 안에는 최치원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였다.

문맥요소

요소 관계 설명
1 최치원(崔致遠) 모셔진 인물 857~?. 신라 말의 학자이며 문장가
2 부성군(富城君) 이름의 연원 신라 시대 충청남도 서산시 일대를 관할하였던 군(郡)
3 도충사(道忠祠) 다른 이름 조선 선조 때(1567~1608) 세워진 부성사의 처 이름
4 경주 최씨 설립 단체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5 최청(崔淸) 함께 모셔졌던 인물 1344~1414. 최치원의 후손. 고려 말·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검토의견

1차 수정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