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성사
부성사 Buseongsa Shr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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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부성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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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useongsa Shrine |
한자 | 富城祠 |
주소 | 충청남도 서산시 지곡면 산성내동길 47-17 (산성리)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9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5월 17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부성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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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부성사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 857~?)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치원은 신라 경문왕 8년(868)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으며, 18세인 874년(경문왕 14) 당나라에서 치른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당나라에서 관직 생활을 하던 중, 879년(헌강왕 5) 민란을 일으킨 황소(黃巢)에게 보낸 격문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885년(헌강왕 11) 신라로 돌아와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고자 힘썼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이에 좌절하여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주옥같은 문장을 많이 남겨 동방 문장의 창시자라 불렸으며, 후대에 유교의 성현들을 모신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조선 선조(1567~1608 재위) 때, 최치원의 덕망을 추모하던 이 지역의 유학자들이 사당을 건립하고 도충사(道忠祠)라 이름 지었다. 19세기 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07년 경주최씨 문중에서 사당을 다시 지었고, 1913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사당의 이름을 부성사라 하였다. 부성은 서산의 옛 이름으로, 893년(진성여왕 7) 최치원이 부성군 태수로 임명되어 이곳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현재 부성사는 외삼문, 내삼문, 동·서재,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당 안에는 최치원의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영문
Buseongsa Shrine
This shrine is dedicated to Choe Chi-won (857-?), a renowned scholar and writer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In 868, Choe went to study in Tang China. In 874, he placed first in the civil service examination for foreigners there and took an official post. In 879, when Huang Chao started a rebellion in China, Choe Chi-won wrote him a well-known manifesto, which made him widely famous as a skillful writer. Later in 885, he came back to Silla and tried to fix the chaotic political situation in the country but did not succeed. Disappointed, he retired from his official post and lived the rest of his life in seclusion. He left a multitude of outstanding written pieces and was called the founder of the Korean writing style. He was also later enshrined at the state Confucian shrine (called munmyo in Korean) together with other renowned Confucian scholars.
A shrine dedicated to Choe was first built in this area by the local Confucian community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jo (r. 1567-1608)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e shrine was demolished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In 1907, the shrine was built anew by the Gyeongju Choe clan. In 1913, i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and named Buseongsa, meaning “shrine of Buseong.” This name commemorates the appointment of Choe Chi-won as the magistrate of Buseong (today’s Seosan area) in 893.
Currently, the shrine complex consists of a main gate, two dormitories, an inner gate, and a shrine. The shrine holds the portrait and a spirit tablet of Choe Chi-won.
영문 해설 내용
부성사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치원은 868년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으며, 874년 당나라에서 치른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당나라에서 관직 생활을 하던 중, 879년 민란을 일으킨 황소(黃巢)에게 보낸 격문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885년 신라로 돌아와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고자 힘썼으나 실현되지 않았고, 이에 좌절하여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주옥같은 문장을 많이 남겨 동방 문장의 창시자라 불렸으며, 유교의 성현들을 모신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최치원의 덕망을 추모하던 이 지역의 유학자들이 사당을 건립하였다. 19세기 말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07년 경주최씨 문중에서 사당을 다시 지었다. 1913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사당의 이름을 부성사라 하였다. 부성은 서산의 옛 이름으로, 최치원이 893년 부성군 태수로 임명되어 이곳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현재 부성사는 외삼문, 동·서재, 내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당 안에는 최치원의 영정과 위패를 모셨다.
참고자료
- 부성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디지털서산문화대전. http://seo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seosan&dataType=99&contents_id=GC04101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