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동문동성당
서산 동문동성당 Dongmundong Catholic Church, Seos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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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서산 동문동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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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Dongmundong Catholic Church, Seosan |
한자 | 瑞山 東門洞聖堂 |
주소 | 충청남도 서산시 동문동 665-2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등록문화재 제321호 |
지정(등록)일 | 2007년 4월 30일 |
분류 | 등록문화재/기타/종교시설 |
시대 | 일제강점기 |
수량/면적 | 1동 1층(일부 2층), 연면적 396.48㎡, 건축면적 358.08㎡ |
웹사이트 | 서산 동문동성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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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충남 서산지역 천주교 선교의 모체인 동문동 성당은 1908년 결성군 구항면 공리에 수곡본당이 설립되면서 시작된다. 초대신부는 폴리 심응영(Desideratus Polly) 신부이다.
현재의 성당은 제6대 신부인 바로(Barraux, 범 베드로) 신부가 1934년 현 위치에 토지를 매입하고, 1937년 신축, 완공하였으며 배면부는 1957년 증축하였다. 성당 내부는 중앙의 신랑(身廊)과 좌우측면의 측랑(側廊)으로 구성되는 3량식이고 신랑은 배럴볼트 천장으로, 측랑은 평천장으로 구성하여 내부공간을 구분하고 있다.
정면 주출입구 상부에는 반원아치창과 원화창을, 좌우 출입구에는 원화창만을 배치하여 위계를 두고 있다. 중앙 종탑과 현관부는 돌출시키지 않고 하나의 면처럼 처리하여 단아한 느낌을 준다.
수정 국문
초고
개항기 천주교 조선교구에 소속되어 있던 동문동 소재 성당이다. 19세기 말에 교우촌이 많았던 서산 지방의 선교를 위해 1908년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는 결성군 구항면 공리에 수곡성당을 설립하고 초대신부 폴리(Desideratus Polly, 심응영)를 파견하였다. 1917년 10월 2일 한국인 신부 안학만이 부임하여 성당을 소길리(현 팔봉면 금학리)로 이전하고, 1919년에 다시 파견된 폴리 신부가 이듬해에 외진 곳에서 벗어나 교세를 확장하고자 음암면 심홍리로 이전하였다. 제6대 바로(P. Barraux) 신부는 성당이 지역의 중심지에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1934년에 동문동 현 본당의 부지를 매입하여 1937년에 서양식 형태의 건물을 준공하였다. 구조는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네이브와 아일 부분 각각에 아치형의 출입구를 두었다. 각 아치 위에는 3개의 원형 옥스아이(oxeye) 창문을 높이의 차이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입면을 구성하고 있다. 포치나 종탑 부분은 돌출되지 않은 채 하나의 평평한 입면 구조이다. 2008년부터 천주교 대전교구의 지구 조직 개편에 따라 태안·서산 지역의 대표 성당으로 이른바 ‘서산지구장좌 성당’이 되었다.
문맥요소
- 안학만 – 신부 - 일제강점기 천주교 신부이자 독립운동가. 1909년 9월 예수 성심신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사목활동 중에 독립운동을 하였다. 1944년 4월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