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곤지암

HeritageWiki
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1월 3일 (일) 07:26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곤지암.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100630000 곤지암], 국가문화유산포...)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곤지암
Gonjiam Rock
곤지암,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곤지암
영문명칭 Gonjiam Rock
한자 昆池岩
주소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곤지암로 72 (곤지암리)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63호
지정(등록)일 1985년 6월 28일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곤지암,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곤지암 바위는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6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경기도 광주시의 ‘곤지암’이라는 지명유래담(地名由來談: 지명의 뜻이나 해당 지역이 생겨난 바에 대한 이야기)을 간직한 화강암질의 바위이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1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고, 큰 바위 상부(上部)에는 수령이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바위 모양이 마치 고양이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묘(猫)바위’라고 불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왜군에게 패해 순국한 신립(申砬)의 시신을 병사들이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그 후로 이 바위 앞에서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아 말에서 내려서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올곧은 선비가 이 앞을 지나가다 신립 장군의 묘를 찾아가, 왜 오가는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바위를 내리쳐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옆에는 큰 연못이 생겼다. 이후로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마을 뒷산 끝자락, 연못이 있는 곳의 바위라고 하여 ‘곤지암(崑池岩)’이라 불렀다고 한다. 1872년 지방지도나『중정남한지(重訂南漢誌)』에는 ‘곤지암(崑池岩)’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현재는 ‘곤지암(昆池岩)’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신립 장군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곤지암’ 주변에는 본래 연못이 있었고, 이 연못은 노곡천, 곤지암천, 경안천과 연결되어 한강으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현재는 초등학교와 상가 건축 등 도시 개발이 이루어져 옛날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화강암질 바위는 경기도 광주시의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전설이 얽혀있는 바위이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1m 간격을 두고 떨어져 놓여 있고, 큰 바위 위에 수령이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바위의 전설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신립(1546-1592)과 관련이 있다. 신립은 임진왜란 때 충주 지역에서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대패하였다. 이에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군사들이 시신을 광주로 옮겨 장사 지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이후로 이 바위 앞에서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비가 신립 장군의 묘를 찾아가, 왜 사람들을 괴롭히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치며 벼락이 바위를 내리쳐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옆에는 큰 연못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말을 타고 지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바위는 ‘마을 뒷산 끝자락, 연못이 있는 곳에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곤지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원래 바위 옆에 있던 연못은 인근의 하천들과 연결되었으나, 현재는 도시 개발로 초등학교와 상가 등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