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
곤지암 Gonjiam Ro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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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곤지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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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onjiam Rock |
한자 | 昆池岩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곤지암로 72 (곤지암리) |
지정(등록) 종목 | 문화재자료 제63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6월 28일 |
분류 |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민속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곤지암,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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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곤지암 바위는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6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경기도 광주시의 ‘곤지암’이라는 지명유래담(地名由來談: 지명의 뜻이나 해당 지역이 생겨난 바에 대한 이야기)을 간직한 화강암질의 바위이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1m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고, 큰 바위 상부(上部)에는 수령이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생기기 전에는 바위 모양이 마치 고양이의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묘(猫)바위’라고 불렸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왜군에게 패해 순국한 신립(申砬)의 시신을 병사들이 광주로 옮겨 장사를 지냈는데, 그 후로 이 바위 앞에서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아 말에서 내려서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올곧은 선비가 이 앞을 지나가다 신립 장군의 묘를 찾아가, 왜 오가는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소리와 함께 벼락이 바위를 내리쳐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옆에는 큰 연못이 생겼다. 이후로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마을 뒷산 끝자락, 연못이 있는 곳의 바위라고 하여 ‘곤지암(崑池岩)’이라 불렀다고 한다. 1872년 지방지도나『중정남한지(重訂南漢誌)』에는 ‘곤지암(崑池岩)’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현재는 ‘곤지암(昆池岩)’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신립 장군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곤지암’ 주변에는 본래 연못이 있었고, 이 연못은 노곡천, 곤지암천, 경안천과 연결되어 한강으로 흘러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현재는 초등학교와 상가 건축 등 도시 개발이 이루어져 옛날 모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영문
Gonjiam Rock
This set of two granite rocks plays a key role in the legend about the origin this district's name, Gonjiam.
The legend is related to Sin Rip (1546-1592), a military official of the middl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Sin and his soldiers fought against the Japanese, but were greatly defeated. Frustrated, Sin drowned himself by jumping into a river. His soldiers buried him in this area. From that day on, when anyone on a horse passed by this rock, the horse's feet became stuck and could not move. One day, a literati went to the tomb of Sin Rip and rebuked him for troubling the people. Out of nowhere, thunder boomed and a lightning bolt struck this rock and split it in two, creating a pond beside it. After then, people could freely pass by the rocks. The rocks came to be called Gonjiam, meaning "rocks with a pond."
The two rocks are 1 m apart. A 400 year-old juniper grows atop the bigger rock. There used to be a pond beside these rocks, as the legend states, which was connected to nearby streams. But the pond was lost through urban development, and a school and stores were built on the site.
영문 해설 내용
이 화강암질 바위는 ‘곤지암’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된 전설이 얽혀있는 바위이다.
이 바위의 전설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신립(1546-1592)과 관련이 있다. 신립은 임진왜란 때 충주 지역에서 왜군에 맞서 싸웠으나 대패하였다. 이에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군사들이 시신을 이곳 인근으로 옮겨 장사 지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이후로 이 바위 앞에서 말을 타고 지나려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비가 신립 장군의 묘를 찾아가, 왜 사람들을 괴롭히느냐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갑자기 천둥이 치며 벼락이 바위를 내리쳐서, 바위가 두 쪽으로 갈라지고 그 옆에는 큰 연못이 생겼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말을 타고 지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바위는 ‘연못이 있는 바위’라는 뜻으로 ‘곤지암’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큰 바위와 작은 바위가 1m 간격을 두고 떨어져 놓여 있고, 큰 바위 위에 수령이 약 400년 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전설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원래 바위 옆에는 연못이 있고 인근의 하천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도시 개발로 연못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초등학교와 상가 등이 들어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