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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인근에는 유대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신도비와 묘소를 수호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인 재실 등이 있다.
 
묘역 인근에는 유대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신도비와 묘소를 수호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인 재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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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참고자료'''==

2021년 5월 8일 (토) 01:57 판


유대기 묘역
대표명칭 유대기 묘역
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형산리 119-2
지정번호 청양군 향토유적 제37호
지정일 2019년 5월 31일



해설문

국문

유대기 묘역은 조선 중기의 무관 유대기(兪大祺, 1547~1615)의 묘가 있는 곳이다.

유대기의 부친은 단성* 현감을 지내고 영의정에 증직**된 유호(兪灝)이다. 유대기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왜군에 함락된 후 선조의 명을 받아 선전관***으로 현지에 급파되어 성이 함락된 경위와 수습 실태, 왜적 동향 등을 살폈다. 그의 행적은 임진전란사의 기술과 일치하고 후대에 임진전란사 연구에 크게 기여하여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유대기 묘역은 묘와 신도비****, 재실을 갖춘 전형적인 조선 시대 사대부 묘역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 단성: 현재의 경남 산청 지역.
  • 증직: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높여주는 일.
  • 선전관: 선전관청에 속한 무관 벼슬.
  • 신도비: 죽은 사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동남쪽의 큰길가에 세운 비석.

영문

Tomb of Yu Dae-gi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무신 유대기(1547-1615)의 묘가 있는 곳이다.

유대기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왜군에 함락되자, 선조(재위 1567-1608)의 명을 받아 현지에 급파되어 성이 함락된 경위, 수습 실태, 왜적의 동향 등을 살폈다.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벼슬에서 물러나 청양에 살았다.

묘역 인근에는 유대기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신도비와 묘소를 수호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공간인 재실 등이 있다.

  • 석물 관련 내용은 확인 안됨.

참고자료